일본계 페루대통령 취임 1주/경제위기속 좌익게릴라 극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의 실질적 지원도 기대에 못미쳐/과감한 개혁추진 인플레는 한자리억제
일본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 쓰러져가는 페루경제를 살려낼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를 모았던 일본인 2세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28일로 집권 1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와 달리 전임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시절보다 페루의 피부경제는 더 나빠진데다 이웃나라에서는 모두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좌익게릴라들이 오히려 극성을 부리는등 페루는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후지모리 대통령이 아무것도 하지못한채 1년을 허송한 것은 아니다.
소수 여당이라는 악조건속에서도 영웅적이라고 불릴만큼 과감한 경제개혁을 추진,수입자유화,국영기업의 민영화,화폐시장의 자유화,노동관계법령개선 등을 마무리지었다.
이는 이웃의 다른 어느 나라 대통령의 경제자유화·개방화 조치보다 빠르고 과감한 것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연료와 식량 등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긴축정책으로 전정권의 후반부 월평균 30%였던 인플레는 최근 5개월간 평균 한자리수로 억제됐다.
문제는 이같은 성과를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다.
경제 자유화의 일시적 충격으로 국민총생산은 3년 연속 감속추세끝에 금년 1·4분기에는 10%의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했다.
생필품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이 중단돼 근로자들은 그들의 구매력이 1년사이 75%나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했다.
페루인 가운데 60%가 식량난에 허덕이게 됐으며 이는 전임대통령시절의 40%에 비해 크게 악화된 것이다.
게다가 지난 1월 발병한 콜레라로 2천4백명이 목숨을 잃었고 페루경제도 치명상을 입었다.
어류와 과일수출은 1억달러가 줄었고 모두 4억달러에 이르는 관광산업마저 파탄직전의 상황까지 몰렸다.
이런 가운데 「빛나는 길」등 극좌게릴라들의 테러·암살이 극성을 부려 지난달에는 모두 6백명이 숨졌다. 이는 좌익게릴라가 준동하기 시작한 80년이래 가장 최악의 규모라고 한다.
특히 최근들어 일계페루인들이 좌익게릴라들의 테러로 5명이나 숨져 페루의 일계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전체 희생자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이지만 경제사정 악화로 인기도가 떨어진 후지모리 대통령의 권력기반을 교활한 수법으로 뒤흔들려는 게릴라들의 계산이 엿보인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일본의 전폭적인 경제지원을 얻어 하루아침에 사정이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페루국민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점도 후지모리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일계사회는 또 자신들의 피습이 현각료중 일본계 3명,중국계 1명이고 국영기업체의 임직원등 중간관리에 아시아계가 대거등장한 것과도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후지모리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대통령선거유세의 약속과 달리 급진적인 경제개혁조치를 취한데 대해 지지층이었던 중·하층 서민들이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취임 1주년을 맞은 후지모리 대통령의 과제는 분명해졌다. 페루인들의 뼈를 깎는 고통으로 만들어낸 현재의 경제기반을 충분히 활용,얼마나 빠르게 국민생활을 향상시키느냐는 점이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어쩌면 1년전에 취임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그의 임기를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이재학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