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장에 가봤는가/유승삼(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유권자들의 최종적인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이번 광역선거 과정을 통해서도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은 더 짙어졌으면 짙어졌지 옅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야 정당들이 그 공천과정에서 빚어낸 추문과 현재 전개되고 있는 선거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타락상은 그들이 예나 이제나 국민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최근 1년간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는 국민의 탈정당화현상은 이번 선거과정을 통해 더욱더 심화되고 고착될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음 둘데 없는 민심은 결국 어디로 흐를 것인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탈정당화현상에 내포된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해 새로운 정치력의 태동에 기대를 걸고도 있지만 결과를 낙관적으로 보기만은 어렵다. 정치에 대한 불신감과 절망감에서 비롯된 이러한 현상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른바 마이홈주의나 생활보수에 더욱더 탐닉하게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구조의 유사성 때문에,또는 의도적인 모방에 의해 우리나라의 정치가 점점 더 닮아가고 있는 일본정치의 흐름이 그 좋은 보기다. 60년대 중반부터 일본 국민들사이에 뚜렷이 나타난 것은 바로 탈정당화경향에 의한 무당파층의 증가였다. 최근 10년간에 있어서 이러한 층의 비율은 40%선에 이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근래 보여주어온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비율과 매우 근접해 있는 수치다.
일본국민의 이러한 정치적 경향의 첫째 바탕은 일본의 그 경제적 성공이었다. 전후 지속적인 안정과 성장을 계속해 나오면서 국민의 대다수가 중류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90%의 국민이 「나는 중산층이다」라고 대답할 정도다. 이는 다분히 환상이며 허위의식이지만 문제는 자신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 바탕은 오랜 자민당의 집권과 그를 통한 자민당체제의 깊은 뿌리내림이 일본국민에게서 정권교대의 희망을 앗아간데 있다. 게다가 자민당을 대체할 강력한 야당이 존재한다면 또 모르겠으나 야당세력은 분열되어 있고 오랜 야당생활로 스스로 만년야당병에 걸려 국민들에게 차기 정권을 담당할 수 있는 확신을 주지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민당은 교만과 부패에 빠져 있고 그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높지만 근본적인 정치변화도,여당의 자기혁신에 의한 정치개혁도 이뤄지지 않는 만성적인 정치적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사정은 외형상 우리의 그것과 너무도 유사하다. 지난날보다는 중산층이 두터워진 것이 그렇고 과장되어 있는 중산층 의식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조사에서도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최고 80%까지 나타난바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상황도 너무도 닮아 있다. 당명만 바뀌었을 뿐 본질적으로는 같은 정치세력이 장기집권해오면서 굳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야권의 분열과 야당병,국민의 야당의 정권담당능력에 대한 회의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여당이 당명까지도 모방하면서 정치체제를 일본의 그것에 가깝게 가져가려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최근 우리 국민들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그 결과인 탈정당화경향이 정치권에 대한 강한 경고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일본의 사정이 말해주듯 권력을 유지하려는 쪽에서 보면 그런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나 무관심은 오히려 권력유지에 이로운 것이다. 증산층의 정치에 대한 불신감은 정치적 무지나 무감각과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우리들은 이 함정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정치적 냉소주의는 아울러 일시적인 사회분위기나 사건에 영향받기가 십상이다. 일본에서 투표율이 선거때마다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역시 우리들은 경계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우리 정치를 진실로 의미있는 영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정치의 흐름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활보수주의의 안일에서 벗어나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의 의사를 정치의 무대에 적극적으로 투영시켜야 한다. 실망했다고 해서 방관하거나 사회분위기에 휩쓸려 감각적 선택을 한다면 스스로를 정치에서 더욱더 소외시키게 될 뿐이다.
정당참여로 이번 광역선거에 대한 관심도는 기초의회 선거때보다는 높아졌다고 하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큰 흥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들의 정치적 선택은 결국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마음에 꼭드는 후보는 없다할지라도 차선의 후보는 있을 수 있다.
그도 저도 어렵다해도 방법은 있을 수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돈으로 유혹하는 후보,각종 연을 동원해 접근하는 후보부터 가려내자. 간략한 홍보물이지만 경력만 살펴 보아도 그 성향과 됨됨이를 가늠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선 오는 주말엔 유세장에도 나가보자. 늘 정치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생활의 조그만 불편에도 짜증스러워하고 그저 좋은 저녁후에 편안히 『서울뚝배기』나 보려는 소시민적 이중성으로는 정치의 변화를 기대할 자격도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스스로의 생활보수주의부터 깨뜨려나가야 한다.<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