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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사 상장, 시장원리로 마무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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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생보사 상장 문제는 1989년 교보생명이 재무부 승인을 받아 상장을 전제로 자산 재평가를 실시한 데서 시작된 후 상장방식을 둘러싸고 지루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제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건실한 생보사의 기업 공개를 통해 생보 시장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18년 동안 상호회사 법리를 내세워 상장 차익을 보험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생보사 주식 상장의 발목을 잡아온 것은 커다란 부끄러움이다. 우리나라는 헌법보다도 '떼법' '국민정서법'이 앞선다는 속설이 있다. 시민단체나 이익집단이 법의 원칙을 무시하고 집단으로 저항하면 정부도 눈치 보면서 어쩌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러 왔다. 생보사 상장 문제가 바로 그 예다.

60, 70년대에 우리나라 생보 산업은 참으로 열악했다. 당시 일부 학자는 우리 생보사를 미국.일본과 같이 상호회사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필자는"주인 없는 회사는 더 어려워진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생보사 영업이 궤도에 오르고 이익을 내는 회사가 있어도 보험감독 당국은 이른바 선단행정(船團行政)으로 규제하고 주주에 대한 이익 배당이 제한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배당부 상품의 경우 우량회사에서 실제 배당 가능 이익보다 낮게 책정해 배당한 사실도 있지만 80년대 후반 자율경쟁이 유도되면서 시정됐다.

오늘날 일부 생보사가 대형으로 성장한 데는 기업 경영을 잘한 이유도 있지만 보험 계약자도 한몫을 차지한다. 일반 기업의 경우에도 고객이 제품을 사준 덕이고, 고객이 외면하면 기업 이익이 생길 수 없다는 논리와 같다. 이 경우 주식회사인 기업이 영업이익을 배당할 때 주주는 물론 상품을 구입한 고객에게도 일정 비율을 배당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기업이 주식을 상장할 때 상장 차익이 생긴다면 차익을 고객에게 주식으로 배정하라는 주장은 들리지 않는다. 주주가 상장 차익이 많은 경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 고객에게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은 주주의 몫이다. 고객이 주식 일부를 배정하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이것은 생보사 주식 상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보사 주식 상장의 경우 보험 회계 원리에 따라 책임준비금 등 지급 능력을 확보해 보험 계약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주식 상장에 따른 가치는 자본시장 법리에 따라 운영해야 한다. 금융감독위원회도 생보사 주식 상장을 앞두고 법리에 맞지 않는 상호회사 논리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 법치국가에서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양승규 세종대 총장·보험법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