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폭행 용납될 수 없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학생들의 총리 집단폭행이라는 전대미문의 돌발사를 접하면서 시민들은 밤새 분노하고 기가 막혀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결국 세상이 여기에까지 이르렀구나 하는 비통함과 절망감에까지 이르게 한다.
정부 권위의 최고 상징인 현직 총리를,비롯 시간강사지만 엄연한 자신들의 스승을,그네들에겐 분명 어른이고 노인일 수 밖에 없는 반백의 60객 시민을 수백명 젊은이가 둘러싸고 구타·발길질·계란세례로 무차별 사형을 가했다는 사실은 분명 반인륜적·반지성적·반민주적 작태였다.
평생을 교단에서 보낸 노교수가 그의 마지막 강의일지 모를 수업을 위해서 뒤쫓는 보도차량을 따돌리고 전철을 타면서까지 학교에 이르러 교단에 섰다. 스승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한학기의 수업에 감사하는 대학원 학생들은 스승을 위해 하얀 모시 내의를 선물로 드렸다.
이처럼 정겹고 흐뭇한 강의실에 후배이고 제자인 학생들이 뛰어들어 「살인마」「분단고착의 원흉」이라고 욕설하며 1시간 가까운 폭행과 난동을 일삼았다.
○사형장된 마지막 강의
학생들의 주장은 이렇다. 『참교육을 말살하고 수많은 민주교사를 학원으로부터 쫓아낸 총리서리가 강단에 선다는 것은 1백만 학도와 4천만 민중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전교조사태란 교사들의 교육적 요구는 명분이 있었지만 법개정을 통한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가투로 정권투쟁을 벌였기 때문에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문교장관 한사람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 국민적 공감과 여론수렴을 끝낸 지난 일이다. 만약 학생들이 정총리가 전교조의 탄압책임자라고 봤다면 어째서 지난 1학기동안 수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총리임명을 받은 다음에는 사형을 가해야 할 만고의 원흉이 될 수 있는가.
이번 사건에 대한 전교조 가입 해직교사의 분개한 목소리가 단연 돋보인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당시 우리의 제자였다. 비록 정장관을 미워하지만 지금 학생들이 보이는 만행은 결코 참교육을 위한 이성적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개탄했다.
그렇다면 반인륜적·반지성적·반민주적 행태를 벌이는 소수의 극렬운동권 학생들은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폭력의 극대화를 통한 사회혼란을 노리는 도시게릴라적 현상의 확산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공권력의 최고책임자에게 수모와 사형을 가함으로써 우리 사회전체에 대해 모욕감을 안겨주고 공권력 체제 법질서에 대한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키자는 계획된 의도라고 밖에 볼 수 없게 된다.
이미 김귀정양 사인규명을 위해 영장을 지닌 검사가 병원 앞에서 저지당하고 발길질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분신자살의 배후세력을 규명하기 위한 필적조사가 명동성당의 울타리를 한치도 넘어서지 못한채대치하고만 있을 뿐이다.
백병원 앞 차도가 재야·운동권세력에 의해 차단당하고 입원한 환자들은 고통과 불평을 연일 호소하지만 「민주화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묵살당하고 있다. 어째서 대학생들이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도심 일부와 병원과 성당을 강점하고 있는데도 이것이 「민주화투쟁」일 수가 있겠는가.
물론 재야운동권 전체를 반민주적 폭력혁명세력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문제는 농성과 시위,총리폭행사건과 같은 돌발사가 일어날 때마다 시민들의 그런 의혹은 증폭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법집행도 존중돼야
어째서 공권력을 집행하는 검사가 발길질 당하고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으며 급기야 공권력의 최고책임자인 총리서리마저 수모와 봉변을 당해야 하는가. 이것이 민주화라면 우리는 도저히 그들이 말하는 「민주화투쟁」에 수긍할 수 없고 그것이 이 사회를 민주화로 이끄는 참다운 길이라고 봐줄 수 없다. 『법의 지배가 확립되지 않으면 국민 각자의 자유와 권리가 소리없이 침해되어 간다』는 점을 경고한 대한변호사협회의 성명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밝혀주는 호소라고 본다.
따라서 외대생들의 총리폭행사건은 정총리 개인에겐 비록 참담한 일이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정당하고 공정한 법질서의 집행이 이뤄지기를 비는 마음이 시민 모두에게 간절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농성중인 명동성당과 백병원 시위자들은 자진해서 검찰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사인규명을 위한 부검과 필적조사를 위한 피의자의 자진출두를 종용해야 할 것이다.
또 자진해서 시위와 농성을 풀고 수사과정을 지켜보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부 또한 정총리의 폭행사건을 수세로만 몰려온 5월 정국을 일순에 뒤집을 정치적 호기로 이용하기 위해 또다른 악수를 두는 일을 벌여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강군참사 사건을 뒤엎는 국면전환으로 이용하기 보다는 법과 질서의 집행이 얼마나 공정하고 정당한가를 보여주는 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총리 폭행사건을 수모와 분개의 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계기로해서 더이상의 비민주적 작태가 발생되지 않도록하는 슬픈 교훈으로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