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교수의열린유아교육] 창조적인 아이는 부모 하기 나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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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다니는 손자와 초등학교 1학년 손녀는 특별이벤트인 미술활동을 하겠다고 해 신청했는데 주최 측에서는 보호자도 함께 앉아 있으라고 했다. 염소자리의 세모 모양을 45분 안에 마음대로 그리거나 장식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궁리를 하더니 자기가 계획한 대로 색종이를 오리기도 하고 색색의 털실을 붙이기도 하며 작품을 만들어 나갔다. 그런데 많은 엄마가 아이들 옆에서 열심히, 정말 너무나 열심히 아이들이 해야 할 미술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시간이 너무 짧아 아이가 작품을 끝내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의지력을 동원해 "작품을 끝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야. 이 활동이 아이에게 좋은 체험이 되어야 해. 기다려주자"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반 정도밖에 마치지 못한 손녀에게 난 아주 조용한 소리로 "10분쯤 남았어. 시간은 충분해"라고 했다. 아이를 불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속도를 조절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는 손을 더 빨리 움직이면서 "할머니, 여기에 풀 좀 발라 주세요"했다. 아이의 생각이나 계획을 바꾸는 것이 아니어서 난 흔쾌히 동의하고 아이가 원하는 곳에 풀이나 본드를 찍어 주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그림을 끝낸 손녀와 손자는 아주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가 직접 생각해 구상하고 그려주고 털실을 붙였다면, 그 창조적 과정은 엄마의 것이다. 아이는 보조였을 뿐이다. 결과가 아무리 좋아서 강사에 의해 칭찬을 받았다 해도 그 작품은 아이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활동을 했다 해도 그 미술활동이 아이의 독립심이나 창의성 발달에 기여한 정도는 다르다.

이 사례 외에도 생활 중에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들으며 "엄마 아빠는 과정을 중요시하셔" "과정은 어떠하든지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야" "엄마는 내 생각이나 표현 방법을 존중하셔" "내 생각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게 확실해" 하는 생각을 하게 돼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원영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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