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바람직한 체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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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자유민주주의는 과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사회체제와 사상인가, 아니면 퇴색해 가는 서구의 이데올로기인가.
21세기를 앞둔 국내외적 격동기에 미래를 개척해갈 사상적 지표를 찾기 위한 이 같은 질문이 지식인들의 논쟁을 유도하고 있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창간한 월간「사회평론」은 6월호에서『한국사회에 자유민주주의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특집을 마련, 6편의 글을 싣고있다.
6명의 필자 중 진보적 성향의 교수 5명이 모두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비판적인 시각인 반면 소설가 복거일씨는 자유민주주의 지지를 명백히 하고 있다.
복씨는『자유민주주의, 이제 실현해야할 이상』이란 글에서『우리 사회의 구성원리인 자유민주주의는 참된 민주주의며, 자유주의의 이상을 펼쳐가기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복씨는 먼저『자유주의는 개인들의 자유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며, 개인에 대한 사회적 강제는 되도록 적어야한다는 이념」이라고 규정하고『민주주의는 권력을 인민들 전체가 가진다는 이념』이라고 해석했다. 즉『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이상을 민주주의적 구조와 절차를 통해 이루려는 이념』이라는 것.
복씨는 우리사회는 자유주의를 지향하면서도 반대로 전체주의적 성격이 많다고 평가한다. 예컨대「법의 지배」라는 원칙이「국가안보」「범죄예방」등의 주장에 밀려나 관료들의 「행정적 판단」이 시민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는 것, 시민들의 자율에 맡겨져야 할 경제활동에 정부가 자의적으로 간섭하는 것 등은 참된 자유주의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복씨는 자유주의가 이같이 침해받는 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그는『자유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지적 투자가 필요하다』며『자유주의는 다른 이데올로기와 달리 비현실적 이상향을 제시하는 매력이 없기에 흔히 기득권을 옹호하는 이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참된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질서를 위협하는 권위주의적 성향과 자유질서를 위협하는 전체주의적 성향이라는 두 벼랑사이로 난 어려운 물길을 헤쳐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주장들 중 손호철 교수(전남대·정치학)의『제3세계와 자유민주주의』라는 글이 주목된다. 손 교수는 남미·필리핀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를 예거하며『제3세계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손 교수는 먼저 자유민주주의를 좁은 의미에 개인과 기업에 대한 자유의 극대화를 추구하는「작은 국가형 자본주의 체제」로 규정지었다. 이때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 민주주의며,「점차적 민주주의」(보통선거, 사상·출판의 자유)로 특징지워진다. 이는 형식적 평등·자유·참정권을 보장함으로써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나 중세 봉건 질서, 군부독재 파시즘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바람직한 것도 인정된다.
손 교수는 그러나『자유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가 계급의 권력행사를 위해 출발한 것이며, 형식적 민주주의에 가려진 실질적 불평등(빈부격차)과 다수민중의 정치권력상실(소수의 권력집중)등 한계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손 교수는 특히 우리나라를 포함한 제3세계의 경우『60, 70년대에 군부독재의 물결이 휩쓴 역사는 「근대화와 함께 민주화가 될 것」이라는 서구자유주의 이론을 파산시켰다』며 서구와 제3세계의 역사적 차이를 강조했다. 손 교수는 이어 『80년대 들어 제3세계에 민주화 물결(우리의6·29와 남미의 민간 정부수립 등)이 일었으나 아직까지 사상·출판·결사의 자유라는 기본 요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는『서구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성공했는가』라는 글에서 「초기 부르좌 자유민주주의」에서 진일보한「민중적 자유민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해 주목된다.
최 교수는 서구에서 부르좌 민주주의는 성공했지만 진정한 민중 중심적 자유민주주의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며『부르좌 중심의 자유와 권리이념을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전체로 확대, 향유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강조했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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