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동생 탓에 … 내 맘에 금이 갔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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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금이 간 거울

방미진 지음, 정문주 그림, 창비

160쪽, 8500원, 초등 4학년부터

나보다 공부 잘하는 동생(그것도 남동생이다). 학교에 가면 나는 '○○○'이 아닌 '누구누구 누나'로 통한다. 내 앞에는 '머리 좋은'이나 '공부 잘하는' 대신 '착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고작이다. 내가 위인데 부모는 나보다는 동생에게 늘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나는 누굴까, 왜 태어났을까. 스트레스, 스트레스, 스트레스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거울을 훔쳤다. 무지하게 떨렸지만, 순간이었다. 그것이 시발이었다. 엄마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고, 친구 지갑을 훔쳐 화단에 버렸다. 사람들이 도벽이라 부르는 그것이었다. 이상한 건, 내가 도둑질을 할 때마다 훔친 거울의 금이 늘어난다는 사실이었다.

표제작 '금이 간 거울'은 이처럼 누구나 성장기에 한 번쯤 느꼈을 법한 형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소재로 한 동화다.

무엇보다 아동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팽팽한 긴장감이 일품이다. 주인공 수현이 '끼약-'하는 유리를 긁는 것 같은 기묘한 환청을 듣고 나면 도둑질을 하게 되고, 물건을 훔치고 나면 거울에는 어김없이 금이 하나씩 늘어나 있다는 설정이 섬뜩하면서도 흥미롭다. 부모의 거듭된 편애에 지친 수현은 어느새 도둑질을 멈출 수가 없게 되고, 마침내 마지막이라고 다짐하며 담임 선생님의 지갑을 훔치러 나선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에 생긴 생채기를 거울의 금에 빗댄 착안이 신선하다.

'금이 간 거울'에서 맛뵈기 식으로 등장한 판타지적 요소는 함께 실린 '기다란 머리카락'에서 더욱 비중이 커진다. 엄마.아빠.남동생 등 온 가족이 짧은 머리인데, 집 안에 기다란 머리카락이 자주 발견되기 시작한다. 주인공 소녀는 늘 술에 취해 밤늦게 귀가하는 아빠의 외도를 의심한다. 외모 가꾸는 데 심드렁한 엄마는 하루종일 TV만 껴안고 살고, 동생은 컴퓨터 게임에 정신이 없다.

그런데 방바닥에 기어다니는 머리카락으로도 모자라 벽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한 공간에 모여살아도 서로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현대의 가족. 가족 내 의사소통의 부재를 갑갑해하던 구성원들은 급기야는 뭉친 머리카락을 웩웩 토해내기에 이른다.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로 등단한 지은이의 첫 동화집이다. 상황설정 능력이나 묘사력이 오랫동안 갈고 닦은 듯 상당한 수준이다. 이밖에 실린 '오빠의 닭''삼등짜리 운동회날''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등에서도 부서지기 쉬운 아이들의 연약한 마음과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독특하게 그려졌다. '교과서적인' 동화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건네줄 만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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