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시시각각

대한민국 외교부, 아직 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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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과를 한다, 직원들에 대한 친절교육을 강화한다, 대민 서비스를 평가에 반영한다…. 뒤늦게 외교부가 부산을 떨고 있다. 민원전화 응대 요령을 담은 동영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모든 공관에 배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공관장부터 전 직원이 매일 아침 의무적으로 동영상을 보고 대민 봉사에 임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급한 김에 종이로 불을 끄는 격이지, 그런다고 해결이 될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공직자의 소임이다. 외교관이라고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못난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잘난 엘리트'라는 고린내 나는 특권의식이 아직도 일부 외교부 직원들 사이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토록 무성의하게 국민을 대할 수 있느냐 말이다. 전화응대 요령을 가르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외교관들의 인식이 문제다.

외국 물을 먹고, 외국어를 하고, 외국 사정에 밝은 것이 특권층 엘리트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해마다 해외여행을 하는 국민만 1000만 명이다. 외교부 직원들보다 외국어를 잘하는 국민이 수두룩하다.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손바닥처럼 보고 있는 국민이다. 국민의 수준이 몰라보게 달라졌는데 외교부 직원들의 인식은 까마득한 과거에 머물러 있으니 '대사관녀'니 '영사관남'이니 하는 황당무계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외교부는 동네북 신세다. 무슨 미운털이 박혔는지 이 정권 들어 개구리 패대기 당하듯 연방 두들겨 맞고 있다. 구조조정 칼바람에 명퇴가 불가피한 고위직 외교관만 40여 명이다. 타 부처 출신이 차관 자리를 차고앉아 도부수(刀斧手) 노릇까지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억울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기 전에 왜 이 지경이 됐는지 반성해야 한다.

외교부는 정부 업무평가(2005년도)에서 22개 부처 중 맨 꼴찌였다. 외교 실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다. 북핵 문제가 잘 풀리고 있길 한가, 대미 외교가 잘 풀리고 있는가. '청와대 코드' 탓만 하지 말고 직업공무원으로서 자신들의 업무수행 능력을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반기문 전 장관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든 것을 실적이라고 우긴다면 '행운도 능력'이란 소리나 다름없다.

외교부도 올 7월부터 1~3급 고위 공직자들의 범정부 인재풀인 '고위 공무원단'에 참여하게 된다. 외교부 직원들은 외무직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아무도 그들 편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왜일까. 외교부 직원들의 수준은 그대로인데 바깥세상의 수준이 눈에 띄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외교부의 배타적 권위를 인정하기가 어렵게 돼 있는 것이다.

밥그릇 빼앗는다고 남 탓만 할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외교부의 역량과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도 외교관 선발방식을 바꾸고 있다. 필기시험과 면접에서 실무처리 능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필기시험 위주의 현행 외무고시 제도로는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성과 사명감을 가진 외교 인재를 발굴하기 어렵다.

외교관 선발방식부터 바꾸고, 훈련과정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제대로 된 공복(公僕)의식도 확실하게 심어줘야 한다. '밥장사'니 '비자장사'니 하는 소리도 말끔히 사라져야 한다. 국민을 이처럼 홀대하면서 어깨에 힘주고 다닐 수 있는 외교관이 우리나라 말고 세상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 외교부? 아직 멀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