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고난의 계절' 드디어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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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110대 의회가 4일 출범한다.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지배하는 시대가 12년 만에 열리는 것이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제부터 남은 임기 2년을 민주당의 강한 견제를 받으며 보내야 한다. 고난의 계절이 찾아온 셈이다. AP통신은 3일 "민주당이 공화당에 타격을 줄 문제들을 집중 제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공화당을 궁지로 몰아 2008년 대선에서 정권을 잡겠다는 전략 아래 의회에서 상당히 강력한 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이라크 문제로 충돌 가능성=부시 대통령은 조만간 새로운 이라크 전략을 발표한다. 악화하는 이라크의 폭력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현재 14만명 수준인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을 일시적으로 늘리겠다는 게 새 전략의 골자다. 백악관은 1만5000~3만명 증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전비도 대폭 늘리려고 하고 있다. 2007 회계연도에 전비로 이미 책정된 700억 달러 외에 997억 달러가 추가로 필요하다며 의회의 승인을 요청할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부시 대통령의 새 전략을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특히 미군 증파는 이라크 수렁에 발을 더 깊이 빠뜨리는 것이 되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에서도 척 헤이글 상원의원 등 상당수가 부시 대통령의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방비 지출 증가도 최대한 억제한다는 방침인 만큼 부시 대통령과 의회 사이엔 긴장의 기류가 흐를 전망이다.

◇6자회담은 관망할 듯=민주당의 상당수 의원들은 그동안 부시 행정부에 북한과 직접대화하라고 촉구했다. 조셉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 톰 랜토스 하원 국제관계위원장 등 앞으로 의회에서 대북 문제를 다룰 핵심인사들이 이런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일단 6자회담에 복귀했고, 그 틀에서 북.미 양자대화가 이뤄지고 있으므로 민주당은 당분간 6자회담의 진행을 관망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신뢰하는 편이다. 그가 대북조정관직을 겸임하는 걸 찬성한다. 따라서 민주당이 당장 부시 행정부에 정책 전환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기선제압 위해 공화당 입김 배제=미국 의회는 통산 한 주에 사흘 일한다. 민주당은 그걸 '주5일 근무'로 바꾸겠다고 했다. '일하는 의회'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중간선거 때 공약으로 제시한 '(의회 장악 후) 첫 100시간 동안 할 일'을 회기 초반에 밀어붙일 생각이다. 특히 로비스트에게서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등 의원 윤리규정을 크게 강화,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깨끗하다'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겠다는 각오다.

또 ^최저임금 인상 ^대학 학자금 융자 이자율 인하 ^줄기세포 연구 지원 등 민주당의 색깔을 살리는 정책을 조기에 입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회기 초반의 100시간 동안은 공화당의 반대 의견을 힘으로 누르기로 했다. 이같은 방침은 공화당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할 것으로 보여 110대 의회가 산뜻한 출발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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