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어이없는 판결실수/피고에 유리한 증거 원고에 유리하게 채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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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법관 착오로 승패소 바뀌어/재심 사유안돼 구제 어려워/전자회사 상표등록 무효소송
대법원이 피고측에 유리한 증거를 판단착오로 원고에게 유리한 것으로 거꾸로 채택,승·패소가 바뀌어 피고측이 패소하는 오판을 했으나 대법원은 법률상 재심사유가 되지않는다는 입장이어서 구제의 길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있다.
더구나 대법원의 오판이 법관의 착오로 빚어졌다는 점에서 법조계에서는 『3심제도 아래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고,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며 그 처리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사건내용=대법원 특별부(주심 김상원 대법관)는 지난해 3월 오디오생산업체 대윤전자(부천시 내동)가 「로드스타 싱가폴」사를 상대로 낸 상표등록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로드스타 싱가폴」사의 「ROAD STAR」라는 등록상표는 무효라는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윤전자는 85년 1월 「ROAD STAR」라는 상표를 출원해 소유자가 됐는데도 싱가폴사가 이를 약간 변형,같은해 10월 뒤늦게 출원했다고 주장했던 것.
이에 대해 특허심판소는 대윤전자의 청구를 받아들여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대법원은 대윤전자 상표가 87년 7월 출원 취소됐다는 이유로 상표법의 소급규정을 적용,원심판결은 잘못된 것이라고 파기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피고인 싱가폴사측이 낸 증거중 이 상표가 78년 이미 일본의 한 회사에 의해 출원됐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싱가폴사의 상표는 이 때문에 무효라고 확정판결을 내렸다.
재판부가 무효근거로 채택한 이 상표는 당초 일본기업 소유였다 싱가폴사가 85년 사들여 소유권을 행사하고 있었는데도 재판부가 이 부분을 간파해 버렸다는 것이다.
◇재심 청구=싱가폴사는 이에 대해 『재판부가 상표등록원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회사의 것으로 여기고 잘못 판결했다』며 지난해 5월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재심을 맡은 대법원의 담당재판부는 『판결이 「과잉판단」으로 잘못된 점이 있으나 중요한 증거를 빠뜨렸거나 기존 대법원 판결과 배치될 때 등에 가능한 재심사유가 되지않는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으며 『판결이 뒤바뀐 점은 인정하나 구제할 길이 없다』고 고민하고 있다.
민사소송법 422조에는 모든 법원·법관의 흠결이나 허위증거 등 11가지의 재심사유가 열거되어 있으나 이번 같은 법관의 증거판단착오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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