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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군 복무 단축 어떻게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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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좌담회 참석자들이 군 복무기간 단축 등 최근 이슈가 된 병역제도 개편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조성환 교수, 정창인 연구위원, 사회를 맡은 강치원 교수, 김성전 예비역 중령, 이태호 사무처장. [사진=변선구 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21일 민주평통 발언에 대해 전직 군 수뇌부가 '군을 폄하했다'며 사과 요구를 하는 등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군 복무기간 단축과 함께 사실상의 대체복무제인 사회복무제도의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선 찬반 양론이 엇갈린다. 군 복무제도의 바람직한 개선방안이 무엇인지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본다.

▶사회=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역대 군 수뇌부가 직무유기를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등의 언급도 있었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창인=대단히 부적절하다. 특히 군 복무 기간 문제는 관련 부처에서 심도 있게 의논하고 지침을 내려야 할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불쑥 나왔다. 어떻게 보면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 꺼낸 것 같다. 거친 용어 표현도 부적절하다. 한마디로 대통령답지 않다.

▶조성환=부적절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대통령의 주요한 정책구상과 발언, 통치 스타일이 너무 충격요법 식인 것 같다. 안보환경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고 국민 설득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선동하는 패턴이었다고 본다. 민주평통 발언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독선적이다. 국민적 동의나 지지를 충분히 이끌어내야 하는 이슈인데도 이를 정쟁화한 것은 적절치 않다.

▶김성전=노 대통령의 발언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데 대해 분명히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발언이 나오게 된 데는 우리 사회에 세 가지 문제점이 깔려 있다. 첫째, 5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국방개혁을 5년 내에 이뤄내기 어렵다. 둘째, '굴러 들어온 놈'이 되다 보니까 국방개혁에 대한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됐고, 되고 나서 하려니까 보수 세력의 반발에 부딪혔다. 셋째, 더 중요한 건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핵심 메시지보다 말하는 기교를 가지고 언론과 군 원로들이 집단 반발하는 것이다. 메시지 자체는 적절했다고 본다.

▶이태호=대통령이 거친 발언을 하고 돌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발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통령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본다. 그런 돌출 발언을 통해 군 복무 단축과 대체복무 문제가 불거진 것은 불행한 일이다.

▶사회=노 대통령의 발언이 오랫동안 논의돼 온 문제를 제기했다는 부분에 대해 어떤 의견인가.

▶정창인=우리가 처한 안보상황에서 국방 의무를 어떻게 형평성 있고 공평하게 부과하느냐가 문제다. 사회적 논의가 복무 단축에만 쏠리고 있는데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병역 문제로 차별받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노 대통령이 '2개월 단축'을 내걸었는데 단축 자체를 슬로건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군사력 확보와 형평성을 전제로 각 개인이 병역 의무를 균등히 부담하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게 우선이며 그 이후 복무 단축을 논의하는 게 맞다.

▶조성환=프랑스가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꾸는 개혁을 했다. 독일에서는 통일 이후 안보환경이 변화돼 구조적 개혁을 했다. 우리도 복무 기간 단축 혹은 모병제 전환에 대해 여러 가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다른 국가의 개혁 부분을 곧바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굴러온 돌' 을 언급하셨는데 군 복무 단축의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한 입장들은 무엇인가.

▶김성전=노 대통령의 발언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마치 대통령이 군 복무 단축을 얘기한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그건 아니다. 군대 가서 '썩는다'는 발언도 노 대통령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군대 가는 병사들이 '썩는다'고 느낀다는 걸 인용한 거다. 군 복무 단축은 필요하다.

▶이태호=병력 감축 문제는 '국방개혁 2020'을 통과시키면서 불가불 따라붙는 당연한 것이다. 이를 노 대통령이 자극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50만 명도 너무 많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정도를 유지하려 해도 복무 기간을 줄여야 한다. '국방개혁 2020'에 따르면 20만 명이 유급 군인, 나머지 30만 명 이상의 장병은 대통령 말대로 '썩는' 것으로 이해되는, 8만원 월급으로 24개월을 복무하는 사람들이다. 장병의 60%가 8만원을 받는 상황을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창인=이 처장이 '2020'을 언급하면서 병력 감축이 당연하다고 했는데 나는 견해가 다르다. 국방부에서 '2020'을 내놓은 것은 2020년까지 50만 명으로의 감축을 법으로 못 박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서가 달려 있다. 3년마다 안보 상황을 점검해 구체적으로 실시 시기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2020'이 갖고 있던 최대의 약점을 상당히 보완한 부분이다. 애초에 국방 개혁의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먼저 군사력 수준을 목표대로 달성하고 난 다음 병력 감축을 검토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병력을 줄인다고 못 박아 놓고 신무기 체계 도입으로 이를 보완한다는 극히 위험한 방식을 썼다. '2020' 자체가 우리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7.2%를 지속한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졌는데 지금 정권에서 경제가 파탄 나지 않았느냐.

▶조성환=노 대통령이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민주평통 발언 같은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먼저 공론으로 던져놓고 그 다음에 군 복무 기간 단축이나 대체복무 시뮬레이션 등 중요한 로드맵을 만들고 연구해 국민에게 진실되게 설명했어야 한다. 군 통수권자로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낯 뜨거운 표현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사회=복무 기간 단축은 젊은이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앞당긴다는 긍정적 측면과 청년 실업률이 높아져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는 반대 측면이 있다. 또 군 개혁 개편을 위한 경제적 바탕이 없으며, 2개월 단축에 2만4000명이란 추가 소요 인원이 발생하는 대목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성전=노 대통령이 아무런 준비 없이 하는 게 아니다. 실업 문제와 연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또 인원 감축이란 고통 없이 개혁은 불가능하다. 현재 병사들 가운데 피엑스(영내 매점) 근무나 운전병.당번병 등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인원이 존재한다. 현대전에서 병력 숫자로 전력이 증강된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이라크전쟁에 나간 미군은 14만 명밖에 안 된다. 병력 수는 더 이상 군대의 질과 연관이 없다.

▶이태호=국방개혁법을 논의할 때 여야 간에 '50만 명 병력 수준'은 대체로 합의됐다. 야당에서 더 줄이자는 얘기도 했다. 병력 50만 명은 이미 전제된 사안이다. 다만 군이 망설이고 육.해.공군 간의 비율 조정 등이 필요했다. 국방개혁안에 따르면 2020년까지 군 병력을 50만 명으로 줄일 경우 그중 현역 사병은 30만 명이다. 그런데 2020년 가용자원은 27만8000명으로 예상된다. 복무 기간을 24개월로 하면 2년에 56만 명이 된다. 장교를 넣고도 6만 명이 남는다. 결국 복무 기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외국 군대 중 독일의 복무 기간은 10개월, 대만은 20개월 정도다. 얼마든지 단축할 수 있다.

▶조성환=차분하게 국가적 논의를 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청년들에게 입영 연기 같은 혼돈과 충격을 준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사회=김성전 예비역 중령은 당번병 등이 불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정창인 위원의 의견은 어떤가.

▶정창인=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군 전력에 도움이 안 된다면 폐지하는 게 정당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비용이 들고 개혁이 안 된다고 보는 것은 문제다. 대통령이 과거의 군 수뇌부가 직무유기를 한 것처럼 말한 것도 적절치 않다. 현재 우리 안보 상황에서 국방비는 적정 수준보다 낮다고 본다. 직무유기라고 한다면 노 대통령이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 이런 식의 발언으로는 군의 사기 저하 이외에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사회=대체복무제와 사회복무제 문제로 넘어가자. 현행 대체복무제와 참여정부가 추진하려는 독일식 사회복무제의 차이는 무엇인가. 왜 논의돼야 하는가.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 있나.

▶정창인=한국의 병역제도에서 가장 잘못된 부분이 현행 대체복무제도다. 아침마다 공익요원들이 캠코더 들고 버스정류소에서 승용차들의 전용차로 위반을 감시하는 것을 보면 피가 끓는다. 이런 불합리한 제도는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고 하는 것은 예외가 없어서 신성한 것이다. 과학을 공부했으니까, 눈이 좀 나쁘니까 군대에 안 가고 복무 기간을 때운다는 것은 병역 의무에 대한 모독이다. 모든 대체복무를 폐지하고 경찰 역시 전문직업인을 양성해야지 값싸게 전투경찰 병력을 끌어다 쓰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군 복무하는 사람도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사회=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반대하는 것인가.

▶정창인=그렇다.

▶이태호=양심적 대체복무는 유엔에서 강력히 권고하는 사안이다. 그것이 아니라도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도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다. 모든 사람을 다 군대에 투입할 수는 없다. 차별을 줄이되 군대를 간 사람들의 복무 기간을 줄이고 대우를 높여 줘야 한다. 양심적 대체복무제는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허용해야 한다. 다만 군 복무 기간보다 더 길게 사회보장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본다.

▶김성전=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현재 병사 운영 체계를 살펴봐야 한다. 종교적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일부 병사는 어차피 군대에 가도 일을 안 한다. 억지로 보내봤자 전력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군 복무 대신 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 등은 자기 일을 다 보고 있다. 현행 대체복무를 없애고 이를 대신할 개선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리=신은진 기자<nadie@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