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비업무용 판정 불복 민소(경제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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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법정 서는 「5·8부동산대책」/한진등 경우 곧 업무용 판정 전망/정부·재계마찰로 번지진 않을 듯
금호그룹이 비업무용 부동산 판정에 불복,주거래은행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정부의 초법적인 「5·8부동산대책」이 법정에 서게 됐다.
금호측은 『정부의 5·8대책에 거스를 의도는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그동안 정부와 재계가 부동산 강제매각조치를 둘러싸고 마찰을 빚어왔던 점으로 미뤄볼 때 사실상 정부를 상대로한 행정소송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금호그룹 계열 광주고속은 소장에서 『지난 88년 2월 경기도 용인의 골프장부지 88만8천평을 주거래은행(외환은행)의 승인을 거쳐 취득,현재 공사진척률이 75%에 이르고 있는데 골프장이 광주고속의 주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뒤늦게 이중 73만6천평을 비업무용으로 판정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호측은 따라서 『비업무용 부동산가액에 해당하는 은행대출금에 대해 연간 13억원의 이자를 추가로 부담시키는 것은 잘못됐으므로 채무부존재 확인청구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금호의 소송제기 사실이 밝혀지면서 롯데·한진 등 4개 그룹도 소송제기 여부를 검토중이나 롯데를 제외한 3개 그룹은 소송을 내지않을 것이라는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우선 한진의 제주도목장과 대성산업의 문경조림지는 작년에 주업요건을 갖추지 않아 비업무용으로 판정됐으나 올해는 국세청에서 업무용으로 분류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한진의 경우 비업무용 판정기준일(작년 4월30일)이후 제동흥산이 생수제조업 및 광업을 계열사에 매각,목장이 주업으로 돼있고 대성산업도 탄광폐쇄 및 건설업면허 매각으로 임업이 주업으로 돼 있는 상태.
다만 여신관리 규정상에는 계속 비업무용으로 구분돼 연체금리(연19%) 부과등 금융제재를 받을 수 밖에 없으나 한진은 은행대출금 80여억원중 50여억원을 갚아 31억원만 남았고 대성은 대출금 6억원을 모두 갚아 금융제재가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구태여 소송을 하지 않아도 땅을 계속 보유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현대그룹은 서울 테헤란로 사옥부지(3천9백평)를 팔지않고 있으나 현대에 땅을 분양했던 토개공이 해약통지를 한데 이어 현대측이 이에 맞서 소송을 냄으로써 이 결과에 따라 처리될 전망이다.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부지(2만6천5백71평)에 대한 비업무용부동산 판정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롯데는 대출금 4백억원중 1백억원을 이미 갚아버렸다. 금융제재를 피해 나머지를 모두 갚을는지,또는 소송을 낼지는 미지수다.
롯데는 이땅을 88년 1월 서울시로부터 1천24억원에 매입했는데 현시가가 1조여원에 이르러 시세차익을 감안하면 금융제재조치를 받아도 별 부담이 안된다.
한편 금호의 소송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한발짝 물러선 상태다.
은행감독원 역시 해당기업들이 금융상의 제재를 감수하고 땅을 보유한다면 다른 추가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방침이다.
정부로서는 현재 매각에 응하지 않고 있는 이들 그룹의 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비업무용 부동산이 매각될 것으로 보고 『이만하면 됐다』고 판단하고 있는듯 하다.
어차피 금호의 소송은 6공에서는 판결이 나기 어려운 사건이다.
5·8대책 자체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만큼 법정에서 시비가 가려질 성질이 아닌 것이다.
피고가 된 외환은행에도 『소송당사자는 은행이지만 어떻게 소송에 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혹스런 표정이다.
따라서 금호의 소송은 그동안 논란을 빚었던 「절차상의 하자」에 대해 한번 짚고 넘어가는 「통과의례」로 봐야할 것 같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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