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학장 투표장(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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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교수님,투표장엔 절대로 못들어갑니다.』
『너희들이 뭔데 교수를 가로막고 학장선출을 방해하는 거야.』
26일 오전 10시 서울 공릉동 산업대 본관 3층회의실 복도.
4대 학장선출을 위해 투표장에 들어가려던 교수 10여명과 쇠파이프를 든채 세겹 인간바리케이드를 친 학생 1백여명 사이에 험악한 대화가 오갔다.
학장선출 참여를 요구하는 총학생회 간부 80여명은 충남 온양에서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도 중단하고 서둘러 상경한 터였다.
참다못한 한 교수가 학생들을 밀치고 투표장으로 들어가려는 순간,『교수들이 모두 들어가 있다』는 고함이 터졌다.
학생들은 굳게 잠긴 출입문을 제치고 들어가 막 투표를 시작하려던 교수들과 밀고 밀리는 몸싸움을 벌여 투표장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됐다.
흥분한 한 학생이 맨손으로 유리창 다섯장을 깨뜨렸다. 손에서 피가 흘렀다. 이어 창밖에서 학생이 던진 최루탄 한발이 터졌다.
매운 연기에 휩싸인 투표장. 교수와 학생들은 밖으로 뛰쳐나올 수 밖에 없었다.
교수들은 정오쯤 학생들 몰래 투표장을 교양관 6층 강의실로 옮겨 학장후보를 선출했다.
학생이 교수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최루탄까지 던지며 학장후보 선출을 방해하고 교수들은 학생들의 눈을 피해 학장후보를 뽑아야 하는 대학가의 현실을 또 한차례 목격하면서 우리사회가 정상을 회복할 날은 과연 언제일지 암담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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