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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 전문 기획집단"새 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전문 영화기획집단이 독자적 입지를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영화계에 맑은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영화기획이 충무로의 새로운 유망사업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은 영화계가 그동안 제작자·감독 등 몇몇 개인의 즉흥적이기까지 한 발상에서 출발해왔던 제작태도를 반성하면서 동시에 제작의 과학화·합리화를 꾀하는 것을 뜻해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전문 영화기획 사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곳은「한국영화기획정보센터」(대표 임상수)와 「신씨네」(대표 신철).
아직은 고도의 전문성이 부족해 영화제작 전반을 간섭하기엔 힘이 부치는 단계지만 대신 참신한 아이디어를 젊은 패기로 구체화해 성공적인 성과를 하나씩 쌓아가고 있어 안팎의 주목을 끌고 있는 기획집단이다.
이들의 사업내용을 대별하면 영화 아이디어를 개발, 이를 제작자와 연결해 상품화하는 것, 소설 등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만드는 한편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발굴하는 것, 그리고 좋은 흥행결과를 낳기 위한 각종 홍보업무를 진행하는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한국영화기획정보센터」는 당초 4명의 젊은 영화인들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12명의 직원이 분주하게 움직일 만큼 사세가 커졌다.
설립 첫 작품으로 홍콩영화『귀타귀90』의 홍보를 맡아 실력을 인정받았고 스웨덴영화 『엘비라 마디간』을 20년 만에 재수입, 짭짤한 흥행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이 센터는 영화계가 몰라 도외시해왔던 여러 이벤트를 기획, 영화의 홍보와 아울러 영화팬의 저변확대에 나름의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중 여름에 여는「해변영화학교」는 감독·배우·평론가 등 영화전문가와 영화팬간의 격의 없는 만남을 통해「영화 전문지식의 대중화」를 목표로 해 성공한 경우로 꼽힌다. 이들은 또 지난해 외화 중 최다관객을 동원한『시네마 천국』이 개봉되기 전 야외시사회란 국내 첫 행사를 기획, 성공하기도 했다.
현재 김한길씨의 동명 베스트셀러소설로 이석기 감독이 준비중인『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의 제작진행을 맡고 있는「한국영화기획정보센터」는 각종 영화자료를 컴퓨터에 입력, 지난 10년 간 흥행 성공작들의 성공 요인과 시나리오 구조분석을 체계화하는 한편 감독·배우·스태프에 대한 자료분석을 마쳐 기획단계부터 제작비 산출이 가능케 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88년 말 설립된「신씨네」는 89년 황기성 사단이 제작한『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기획을 맡아 서울에서만 16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 성적을 냈다.
지난해에는 본격적인 첫 여성영화로 평가받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를 기획, 여성의 성적 상품화 소재가 판치는 영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신씨네」는 현재 강수연양이 국내최고 출연료를 받고 나오는 『베를린 리포트』의 기획·홍보를 맡아 제작진과 함께 뛰고 있다.
영화경론가 허창씨는『기획은 길게 하고 실제제작은 짧게 하는 제작방식은 이젠 구미영화의 상식』이라며 『영화기획 전문사의 활동이 아직은 초보단계라 할지라도 이것이 한국 영화계 고질중 하나인 기획 력 빈곤과 무시를 일정하게 나마 씻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허씨는 덧붙여 아카데미상 수상작인『레인 맨』을 예로 들어 『이 영화는 1년여의 기획과정에서 시나리오를 일곱 번이나 고쳐 쓰고 작가만 해도 네 사람이 바뀌었으며 감독도 세 사람이 바뀌는 등의 기획 진통을 겪은 끌에 탄생한 걸작』이라며 기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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