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성균관 앞뜰의 은행나무가 이 나라 교육을 말해주고 있다. 그 그늘은 아직도 넓고, 그 뿌리도 너무나 깊게 퍼져있다. 지나간 조선조 5백년동안 그 앞마당은 바로 전국 선비들의 입시장이고 공권력의 접근로에 있었다. 그래서 당시의 관학인 성리학의 요람이 되고 모든 벼슬의 원천이 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곳은 한맺힌 평생의 재수생을 너무나 많이 이 나라 방방곡곡에 심어 놓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는 그 재수생 할아버님의 후손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재수생의 나라(?)를 지금도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날 이 나라에는 도처에 현대판 성균관이 많이 생겼다.
이론중심, 출세위주, 또는 대기업 입사 응시용으로…. 모두들 21세기 산업사회가 요청하는 실제적인 일과는 동떨어진, 말하자면 새롭고도 낡은 공리공론으로 일하기 싫어하는 새 선비들을 또다시 대학에서 길러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취업률이 겨우 45%도 안되고, 또한 새 직장에 들어가서도 처음부터 다시 일에 대한 도덕성부터 재교육 받아야 한다니 우리대학교육의 부끄러움인 것이다.
그래서 대학의 축제인 졸업식도 사실은 새로운 고급 실업자의 어두운 그림자를 늘어뜨리는 행사가 돼버렸다.
이러한 관학의 성역에서 나오는 폐습은 어느 나라에도 있었다. 민주주의의 모범이고 전통의 나라인 영국에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이 아직도 건재한다. 그들은 순수한 형이상학적인 이론교육으로 지도자를 길러내는 입기명륜의 전당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남고 싶었다.
그러나 많은 대학들이 그 두 대학을 본받아 우후죽순격으로 뒤따라 세워지니 이제는 관념적인 지도자 양성대학은 포화상대에 이르렀다..
우라나라에서도 서울대학과 똑같은 대학이 전국적으로 1백여개가 넘게 생겨난지 이미 오래다. 마치 철폐된 서원이 다시 일어나듯 했다.
이렇게 똑같은 대학을 만들어 경쟁하던 시대를 제2의 대학물결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세계적으로 나라마다 거세게 밀어닥쳐 오는 실용적인 대학교육의 추세를 우리는 고등교육의 제3의 물결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성리학적 교육보다 오히려 생산적인 실학의 대학교육이 절실하게 되었다. 철의 여성정치가인 대처전총리는 그의 모교졸업식에는 나가지 않아도 런던에 새로 생긴 폴리데크닉대학 졸업식엔 꼭 참석해 영국의 새로운 갈길을 진지하게 호소했다. 그것은 전통있는 영국사회에서도 새로운 제3의 대학물결을 정책적으로 받아들여 지난 30년동안 영국식 실사구시의 실학적인 고등교육에서 대성공을 이룩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도 바로 그때가 왔다.
실사회가 절실하게 요청하는 과목을 실용성있게 교육해 산학협동으로 1백% 취업이 되는 고등교육의 대학이 필요한 때가 왔다.
바로 이 제3의 대학물결이 우리나라에도 밀어닥쳐 온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것이 바로 개방대학 교육체제인 것이다. 고교졸업예정자로부터 남녀노소에 이르기까지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수학능력이 있고 의욕이 강하면 들어갈 수 있는 진정한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훌륭한 대학 제도다.
「공부라는 것은 평생을 두고 하는 것이다. 훗날에 기회가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자기가 필요한 공부를 찾아서 하자. 취직을 먼저 해놓고 나서 천천히 대학을 나오자」. 이러한 사고방식이 우리나라 사회에 보편화될 때 우리의 보배로운 교육열을 앞으로 더욱 효율적으로 보존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매년 입시때가 되면 온 국민이「떨어지면 죽는다」고 호들갑 떠는 학벌사회의 사고방식도 차차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우리 대학과 사회, 언론과 교양, 그리고 가정과 선생이 모두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우리 모든 대학의 교문을 활짝 열자. 그리하여 대학의 정족성을 타파하고, 학문의 불야성을 만들자. 역경의 뭇 호학의 열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직업에 대한 구체적인 의식없는 대학교육은 앞으로 없어져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 대학교육은「대학을 위한 대학의 교육」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오히려 학생과 사회적 요청에 따라「학습자 본위의 교육」으로 다양화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21세기 고도 산업사회를 맞는 한국실학의 새로운 대학 비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94년 대교육개혁을 위해 한번 생각해 볼때가 온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