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교수의열린유아교육] 혼내고 윽박지르면 교육효과 '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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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바빴고 배가 고파서였겠지만 나의 인내심은 한계를 넘기 직전이었다. 신경질이나 화를 내는 것이 아이의 자신감에 해가 됨을 몰랐다면 나는 "너 왜 이래? 내가 잃어버렸니?" "넌 왜 책을 아무 데나 놓고 나한테 신경질이야?"하고 싶었다.

손녀와 함께 책이 없어진 과정을 되짚어 보려 했으나 더 큰 소리로 칭얼거려 난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는 대신 "할머니는 지금 배고프다. 밥 먹고 다시 이야기 하자"며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벌었다.

아이는 밥상까지 쫓아와 "어떻게, 어떻게…"하며 계속 나를 자극했지만 극기훈련하듯 인내하며 "할머니 진지 드실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그 후 책을 샅샅이 찾아도 나오지 않으니 아이는 "내 생길 채~액~"하며 울어댔다. 난 "ㅇㅇ아, 울거나 칭얼거린다고 책이 나오는 건 아니야. 일단 언제까지 있었나 생각해 보자"고 했더니 억지로 울음을 씹으며 "학교에서 자리를 바꿀 때까진 있었는데"라고 했다. "그럼 그 친구가 모르고 가져간 모양이네. 우리 전화해 보자"고 했더니 "친구가 왜 내 책을 가져가겠어? 싫어"라고 했다. "ㅇㅇ아, 문제는 언제든지 일어난단다.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거야. 운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 울면 누구든지 알아 들을 수가 없어."

이 말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이 책은 못 산단 말이야"라고 했다. 나는 교과서 뒷면의 인터넷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여주며 책이 없으면 살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밤이라 책을 찾거나 살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하며 대안을 의논하였다. 이것저것 이야기하던 아이는 기꺼이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2시간 동안의 문제 해결과정에서 나는 아이가 오후 내내 온갖 걱정과 불안에 시달렸음을 알았다. 소리 지르지 않고 꾹 참은 건 잘 한 일이었다.

만일 내가 소리를 질렀거나 화를 냈다면 나에 대한 신뢰는 깨졌을 것이고 문제가 다시 생길 때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될 뻔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순간 아이가 두 손으로 나를 끌어안더니 "할머니 고마워요"라고 했다. 문제 상황을 교육의 순간으로 연결할 때 올바른 삶의 태도가 형성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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