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선거 떡잎부터 잘라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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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년 상반기중에 실시키로 된 지자제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불법·사전선거운동,선심공세 등 선거타락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심히 우려할 현상이다.
만약 이러한 양상에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새로 시작하는 지자제 실시의 참된 의의는 실종돼 버리고 가뜩이나 어려운 여건에 놓일 내년도 경제에 물가상승과 과소비의 확산 등 무거운 짐만 더 지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계당국의 결연한 의지가 요구된다. 그 동안 선거 때마다 경험했듯이 당국이 공명선거를 다짐하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었으나 그때마다 그것은 말뿐이었고 실제로는 단속도,그 뒤처리도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한 경험을 거듭하는 동안 선거에 나서는 사람이나 유권자들이나 다같이 선거란 으레 그런 것이란 인식이 깊이 심어졌고 그에 따라 선거법은 늘 사문화되거나 유명무실했던 것이 이제까지의 사정이었다. 특히 법은 당선자에 대해서는 너무도 관대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쓰든지 당선만 되면 된다는 의식이 정치지망생들에게 보편화되어 있다.
이번 지자제선거는 이러한 인식을 깨뜨리고 선거풍토의 개선을 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자제선거 역시 정치권력과 무관한 것일 수는 없으나 본연의 취지로는 권력의 향방을 가름할 정도의 정치적 비중은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번에야말로 당국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치적 색깔을 구분하지 않는 엄격한 법집행을 해줄 것을 기대해보는 것이다. 당국은 적발된 불법선거운동의 관련자들은 초기부터 신속하고 엄격히 처벌하여 그것이 전국의 출마희망자들에게 경종이 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중앙행정기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여긴다. 현재 지자제 실시로 인해 지방공무원들의 신분변화가 불가피해짐에 따라 자칫하면 일부 지방공무원들이 사후를 위해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자들과 유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점에 대해서도 당국은 면밀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명정대한 정치풍토의 확립은 당국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유권자들에게 그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들은 정치권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에게 정치권력을 안겨준 것은 우리들 스스로였다는 점을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시·군·구 기초의회선거에서는 3억원,광역의회선거에서는 7억원의 선거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는 앞으로 금품의 유혹이 집요하리라는 것을 예고해주는 것이다.
출마희망자들의 직업을 살펴보아도 과연 그들에게 진정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하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할 것인지가 의심스러운 경우가 없지 않다.
잘못하면 이번 지자제선거는 졸부와 건달정치인들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지방의회를 장악하게 되면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될 것이고 그들이 얻는 이익만큼 그 피해는 결국 유권자들이 안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초를 닦기 위한 지자제가 도리어 민주화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데는 유권자의 각성된 의식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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