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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신도시 '애타는 원주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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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분당 신도시(5백94만평)의 절반 규모인 2백83만여평 부지에 2만9천7백가구가 들어설 예정인 경기도 성남시 판교 신도시.

'제2의 강남'으로 개발을 앞둔 판교 신도시 한편에는 개발 논리에 밀려 소외된 주민들의 절박함이 묻어 있다. 수십년간 살아온 터전을 내놓고 떠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집과 농토를 헐값에 넘겨야 할 상황에 처한 주민들의 애끓는 외침도 담겨 있다.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판교 지역 전체가 보상 문제로 들썩이고 있는데도 "보상은 필요 없으니 그냥 이대로 살게 내버려 달라"고 호소하는 주민들이 있다. 판교 신도시 개발 구역에 있는 개나리마을을 비롯, 3개 마을 주민들과 종교단체.기업 등이다.

판교 신도시가 건설되면 이곳에 학교 부지가 조성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개나리마을(92세대.주민 2백95명)이 처음 조성된 것은 1980년. 당시 경부고속도로에서 25m가량 떨어진 곳에 살던 주민들은 정부가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살던 집을 떠나 1㎞가량 떨어진 이 곳으로 이주했다.

마을 주민회장 김영훈(金永勳.73)씨는 "20여년 전 이주 초기엔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지하수를 파고 생활하는 등 온갖 불편을 겪다 이제 조금 안정될 만하니 떠나라 한다"며 "두 번은 못 쫓겨납니다, 이제 좀 살 만한데 또 떠나라면 어디로 가라는 겁니까"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분당 신도시의 경우 개발 당시 아파트 단지에 있는 서현.야탑동의 일부 취락지역을 개발 대상에서 제외했듯이 개발계획에서 제외해 주도록 요구하는 진정서를 청와대와 건교부.토지공사 등에 수차례 보냈다.

기업체와 종교단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98년부터 분당종합물류센터(지하1층.지상2층)를 운영해 온 서기영(徐基英.56)씨는 성남시에서 증축 허가(지상 4층 규모)를 받았으나 최근 공사를 중단했다. 이 때문에 徐씨는 20여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들여 건설한 물류센터를 5년도 안 돼 철거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徐씨는 "개발 우선주의에 밀려 수십억원을 투자한 멀쩡한 건물을 철거하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라고 호소했다.

인근에 위치한 한신교회와 영운정사 등 종교단체 신자 4천5백여명도 마을과 시설물에 대한 존치를 요구하는 서명운동과 함께 관계기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토지공사 관계자는 "마을을 개발 대상에서 제외할지는 토지이용계획, 도로망, 철거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 여부 등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사업 시행자 간 협의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 보상 요구='생존권 쟁취. 주민 울리는 턱없는 보상계획 철회하라'. 판교 신도시 곳곳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힌 붉은색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개발지역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난 2일 판교 신도시 개발예정지역 주민 1천여명은 판교 입구에서 토지보상가 현실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했다.

판교 신도시 개발예정지의 공시지가가 76년부터 그린벨트로 묶이는 바람에 지난 26년간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해 주변지가의 5분의1 수준 이하로 떨어져 있으므로 제대로 보상 기준을 적용받을 수 없다는 것이 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표준지 공시지가가 적용되는 내년 1월 15일 이후 보상하는 '선(先) 보상, 후(後) 사업승인'을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현재 주변 시세를 감안해 평당 보상가를 임야 1백만원, 논.밭 3백만원, 대지 6백만원 이상으로 책정▶이주단지 입주 후 철거▶이주 택지(1백20평) 조성원가의 50% 수준 공급▶상가부지 확대 공급▶세입자용 임대아파트 공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판교 개발 비상대책위원회(김대진 위원장.58)는 "개발 주체 측이 판교 신도시 개발계획 승인을 올해 안으로 서두르는 것은 내년도 표준지 공시지가 상향 조정에 대비해 올해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상액을 산정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토지공사 관계자는 "적정한 보상가 책정을 위해 감정평가법인 세 곳(주민 추천 한 곳 포함)에 의뢰해 평균 보상가를 산출한 뒤 연말까지 현금 보상할 계획"이라고 밝혀 진통이 예상된다.

성남=엄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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