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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도-내 자녀 합격보다 대입제도개선 빌었으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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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2월은 잔인한 달이다. 집안에 수험생이 있건 없건 온 나라 사람들이 함께 입시열병을 앓고 입시전쟁을 치른다.
그 중에서도 지난 한해 동안 내내 「고3 엄마병」에 시달렸던 여성들은 섣달이 되면 마치 생사의 기로를 헤매듯 초주검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모든 신문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듯 이 여성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전국 각지의 사찰과 교회, 그리고 산에서 밤늦게까지 또는 철야로 촛불을 태우며 기도하고 절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이젠 너무 익숙한 세시풍속도가 되고 말았다.
입시 당일 굳게 닫힌 철문에 이마를 댄 채 몇 시간씩이고 기도하는 어머니의 얼굴 역시 단골 메뉴처럼 지면을 장식한다.
「기도하는 모정」 「안타까운 모성」따위의 진부한 설명이 곁들여진 이런 사진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마도 상반된 상념에 사로잡힐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아무리 사회가 급변한다하더라도 절대 불변하는 것은 어머니의 마음이라는 신념을 확인할지도 모르며, 또 어떤 이들은 여성들의 맹목적인 기복신앙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머니들의 그런 행동이 자녀들에게 지나친 부담감을 주어 역효과만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가지 공통점은 이들 모두가 자녀의 대학입학 여부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정성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교육풍토·교육환경이 너무나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개혁이 시급하다는 견해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러나 유능한 어머니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자녀를 합격시켜야 하며, 합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장한 어머니」는 여전히 온갖 역경을 헤치고 자녀들을, 특히 아들을 명문대에 들여보내고 출세시킨 여성이 뽑힌다. 아무리 훌륭한 시민으로 길렀어도, 아무리 탁월한 기능인으로 길렀어도, 자녀를 대학에 들여보내지 못한 어머니는 아예 자격 미달이다.
따라서 자녀에게 능력이었건 없건, 자녀의 적성에 맞건 안 맞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에 입학시키는 일이야말로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맡겨진 최대 과제가 되고 말았다.
전업주부는 「집에서 놀면서」애 하나 공부 제대로 못시키느냐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그리고 취업주부는「알량한 돈벌이」때문에 아이 인생을 망치지나 않을까 하는 자격지심 때문에 우왕좌왕, 좌불안석, 혼돈의 세월을 보내다가 덜컥 입시 날을 맞는다. 자신과 자녀의 인생을 낭비해 버린 듯한 그 허망함을 달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어머니들이 교회와 절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들의 저 철야기도가 맹목적인 기복신앙에서 자녀들이 사람답게, 자유롭게 살수 있는 날을 앞당기기 위한 개혁에의 의지로 바뀐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모성이 아닐까 하고 꿈꾸어 본다.【박혜란<인간교육실현학부모 연대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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