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국민은 냉정한데, 과천청사 닭 안먹어

중앙일보

입력

온 나라가 2년 8개월만에 발생한 조류 인플루엔자(AI)로 바싹 긴장하고 있다.

특히 양계업계나 관련 유통업계, 영세 상인들은 인체 감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소비자들이 닭과 오리고기를 꺼려 큰 피해를 입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우리나라에 AI가 처음 상륙했을 당시 닭고기 소비가 평소 수준의 40%까지 곤두박질 쳐 자살하는 관련 업계 종사자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러모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농림부와 계육협회 등에 따르면 닭고기 산지 가격은 지난 22일 1천15원, 23일 1천7원, 24일 967원 등으로 파악됐다. 23일 AI 의심 사례가 발견됐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 이후 다소 떨어지긴 했으나 가격 하락 폭이 크지는 않은 셈이다.

도계량 역시 24일 89만8천마리에서 25일 76만9천마리로 다소 줄었으나,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농림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국민들이 2003년에 비해 많이 냉정해졌다"며 반색하고 있다.

또 27일 권오규 부총리와 박홍수 농림부 장관이 닭고기로 점심을 먹었고, 앞서 26일 한명숙 총리와 류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등도 농림부의 대책 상황실에서 보고를 받은 뒤 박 장관과 함께 삼계탕 오찬을 갖는 등 '닭고기 시식' 행사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솔선해 닭고기에 대한 국민들의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고 어려운 상인과 농민들의 불필요한 피해를 줄여보자는 취지다.

그러나 현재 과천 청사 구내 식당의 상황은 이와 조금 다르다. 27일 과천 청사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외주 업체 관계자는 "지난주 AI가 발생한 뒤 메뉴에서 닭도리탕과 닭안심까스 등 닭과 관련된 음식을 모두 뺐다"고 밝혔다. AI 발병 이후 수요가 뚝 끊겼기 때문이라는 것.

이 관계자는 "심지어 최근 계란 20판을 장조림에 넣어 내놨으나 손님들이 손을 대지 않아 장조림을 모두 버렸다"면서 "닭고기를 익혀 먹으면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식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팔리지 않는 것을 계속 준비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에 대한 홍보에 앞서 공무원 내부 홍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만한 대목이다. 닭이나 오리 고기를 먹어 사람이 AI에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은 70%이상 단 몇 일내에 폐사하는데다 현재 방역 당국이 철저하게 발병 지역의 가금류 등을 살처분하고 있어 감염 고기가 유통될 수 없다.

또 만에 하나 유통된다고 해도 이 바이러스는 섭씨 75도 이상에서 5분 동안만 가열하면 죽는 만큼 익혀 먹으면 조금도 꺼릴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 해외에서도 고기를 먹어 사람이 AI에 감염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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