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아이' → 2006년 '11월 신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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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아버지 영정을 든 모습(사진)이 보도되면서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던 조천호(31.얼굴사진)씨가 26일 결혼한다.

조씨는 1980년 5월 21일 광주 금남로 시위 중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진 조사천(당시 34세)씨의 2남1녀 중 장남이다. 아버지 관 앞에서 상복을 입은 채 영정을 들고 있는 다섯 살짜리 어린이 모습이 외신기자의 카메라에 잡히면서 이들의 광주의 비극을 세계에 알리는 주인공이 됐다.

그는 군 제대 후 98년 6월부터 5.18묘지관리사무소 일용직으로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전시실 안내를 맡아오다 2003년 9월 광주시 총무과(기능직 9급)로 자리를 옮겨 일하고 있다. 조씨는 "개인적인 일이 널리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워 언론과 접촉을 피해 왔으나 결혼 사실은 알려야 한다는 집안 어른들의 조언을 따랐다"고 말했다.

신부 고은아(27)씨는 지난해 가을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고씨를 만난 이후 성격이 한층 쾌활해졌다며 어머니 정동순(53)씨가 신부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주례는 조비오 신부가 맡는다. 조 신부는 조씨가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계림동 성당에 다니면서 알았던 분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했고 초대 5.18재단 이사장을 맡아 평소 어른으로 모셔왔다.

조씨는 "신부님에게 주례를 부탁드리러 갔더니 '세월이 참 빠르군요'라며 격려해 주셨다"며 "관심을 보여준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겠다"고 말했다.

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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