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이후의 불안(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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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스크바의 한 시민이 식료품가게에 들어가 고기를 달라고 했다. 점원은 한마디로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배추라도 한 포기 사자고 했다. 그것도 없었다. 이번엔 설탕이라도 있으면 한 봉지 달라고 했다. 역시 다 팔리고 없다고 했다.
고객은 역정이 났다. 『당신은 기억력도 좋구려. 그 많은 품목들이 없는 것을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소?』
역정이 나기는 점원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은 어디서 온 사람이오? 머리 좋은 소련사람들은 가게에 무엇,무엇이 없는지 쯤은 다 기억하고 있단 말이오….』
요즘 한 외국 잡지가 소개한 소련의 블랙 유머다. 이런 얘기도 있었다. 대학입학시험에 『모스크바의 자유시장은 어떤 곳이냐』는 문제가 났다. 『사는 자유는 있는데,파는 자유가 없는 곳』이 모범답안이라는 것이다.
정부 관사가 어느 공장을 찾아가 근로자들에게 연설을 했다. 『풍요로운 내일을 위해 작업량을 두 배로 늘립시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신이 난 관리는 연설을 계속했다. 『풍요로운 내일을 위해 여러분의 적금을 절반으로 줄입시다.』 장내는 조용했다.
화가 난 관사는 반대하는 근로자는 모조리 구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순간 근로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노동자들을 묶어갈 끈이 없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물론 누가 만들어낸 우스갯 소리다.
요즘 소련의 공장들은 노동자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문을 닫은 곳이 많다.
연방국들의 독립운동도 여전히 속에서 들끓고 있다. 「역사적인 풍년」이 들었다는 농촌에는 그것을 거두는 사람이 없다. 밭엔 야채가 무성해도 도시사람들은 푸성귀를 먹지 못해 야단들이다. 가솔린이 귀해 트럭들은 발이 묶여 있다.
근착 타임지에 소개된 소련의 한 여론조사는 소련 국민의 62%가 올 겨울에 먹을 것이 없다는 호소를 담고 있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고통이고 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냉전이 지나간 자리엔 동서의 평화 아닌 동의 불안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세계는 사회주의의 병까지도 고쳐주어야 평화의 빛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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