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의 「주역」 고르비 “만세”/독ㆍ소 조약과 장벽붕괴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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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감격도 잠깐… 변화 수용 분주/「사회주의 우등생 동독」 1년만에 없어지다니…/소와 협정은 냉전종식 재확인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1주년이 되는 9일 베를린은 특유의 습랭한 초겨울 날씨 탓이기도 했지만 1년전 그날의 감격과 환희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산책나온 몇몇 시민들이 그날의 감동을 다시 맛보려는 듯 장벽이 무너진 자리에서 몇마디 환담을 나누다가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통일의 날인 10월3일을 전후해 잠시 개방됐던 브란덴부르크 문은 보수를 위해 다시 폐쇄했다. 주변에는 구 동독군 모자와 계급장,소련군 모자 등이 한 시대의 유물인양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었다.
『지난해 11월9일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동서 베를린 시민이 서로 엉켜 환호하며 울부짖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브란덴부르크문옆 포츠담 광장에 자전거를 타고 산책나온 노이하우스씨(30ㆍ가구회사 종업원)는 『지난 1년이 너무 빨리 진행돼 아직도 통일됐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지난 1년은 독일 역사 가운데 가장 숨가쁘게 돌아간 한해였다. 89년 11월9일 오후 7시 당시 구공산당의 정치국원이던 귄터 샤보프스키의 장벽개방 발표 이후 흥분한 독일 국민들의 망치와 끌에 의해 한조각씩 무너져 내린 베를린 장벽은 1년이 지난 지금 동서베를린 사이의 32㎞구간중 4.5㎞만 남았다.
이중 1.3㎞구간에 세계 각국 화가 90명이 그린 분단과 통일과정을 묘사한 벽화가 전시되고 있다.
베를린장벽 철거 및 1천3백56㎞에 달하는 구 동서독 국경의 철조망 철거작업을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를 넘는 사람에게 발포하던 구 동국 국경수비대 요원들이 맡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장벽과 철조망이 실제로 없어지는 이같은 외형상의 변화보다는 장벽붕괴 이후 동독 및 동독 주민이 겪은 내면상의 변화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다.
어떻게 40년 이상을 지탱해온 하나의 주권국가가,그것도 「사회주의권의 우등생」이란 찬사를 들을 정도로 사회주의 여러나라들의 부러움을 사던 그 당당하던 「독일민주주의 공화국(DDR)」이 불과 1년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가 있단 말인가.
베를린장벽의 붕괴 이후 구 동독은 자유총선(3월18일),구 서독과의 경제ㆍ사회통합,그리고 통일(10월3일)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분야의 제도와 가치를 포기했다.
이러한 모든 변화를 가능케 해준 인물은 마침 이날 독소 포괄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2일간 일정으로 독일을 방문한 고르바초프다.
장벽이 붕괴된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장벽개방의 명령을 내린 인물이 누구인지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고르바초프가 없었다면 장벽 붕괴와 나아가 독일통일도 불가능했다는 데에 모든 독일인들은 공감하고 있다.
이날 전독일 국민들의 감사와 환영속에 본에 도착한 고르바초프는 「독소 선린ㆍ동반자관계ㆍ협력에 관한 조약」과 「경제ㆍ산업ㆍ학문ㆍ기술분야에서의 포괄협력에 관한 조약」등 2개의 조약과 「노동ㆍ사회정책에서의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뒤 『이제 대립의 시대는 영원히 끝났다』고 선언했다. 「선린ㆍ동반ㆍ협력」조약은 정상회담은 매년,외무장관회담은 연 2회,국방장관회담은 정기적으로 개최하게 함으로써 주변국가로부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체제에 대한 배치가 아니냐는 우려를 낳을 정도로 세기말의 유럽협력과 번영의 핵심역할을 양국이 선언하고 있다.
아울러 「노동ㆍ사회정책」협정은 양국 협력이 고용ㆍ노동권ㆍ사회보장 분야에까지 확대됨으로써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 국가간에 맺어진 적이 없는 협력을 다짐하고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번 조약ㆍ협정체결을 계기로 양국은 동서 냉전시대의 완전한 종말을 재확인하는 한편 독일과 소련은 유럽에서 가장 밀접한 관계의 국가로서 실질적인 협력을 급속도로 확대시킬 것을 천명한 것이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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