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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없는 혁명가극 “항상 만원”(북녘의 문화ㆍ예술: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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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공연/무용수ㆍ합창단 등 연인원 5천여명 등장/천회 목표… 500회 넘으면 「인민예술」 칭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겨레여 통일의 노래 높이 부르자」「영광스런 조선로동당 만세」「범민족통일 음악회 참가자들을 렬렬히 환영한다」 등의 구호가 사방에 나붙은 평양 최대의 극장 2ㆍ8문화회관에서 범민족통일 음악회의 막이 오르고 내렸다(10월18∼23일).
지난달 18일의 범민족통일 음악회 개막식에 이은 기념공연은 「인민상 계관작품」이라는 『5천명 대공연­행복의 노래』. 항일 유격대 투쟁시기부터 「사회주의 락원」을 건설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김일성 공적을 찬양하는 이 무용음악 서사시는 서장 「수령님께 드리는 행복의 노래」로 시작됐다. 1장 「위대한 사랑의 길에서 행복은 꽃피네」,2장 「수령님 사랑속에 행복할수록」,3장 「햇빛 넘친 인민의 락원」,4장 「수령님과 당을 따라」가 무용ㆍ합창ㆍ기악중주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종장 「만수축원의 노래」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춤과 함께 펼쳐지면서 끝난다. 지난 87년 4월15일 초연된 이래 수없이 공연됐다는데 이같은 대규모 공연물들은 1천회 공연을 목표로 해서 일단 5백회를 돌파하면 「인민예술」등의 칭호가 붙는다. 1시간여에 걸쳐 무용수와 연주자 및 합창단원 등 연인원 5천명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번갈아 등ㆍ퇴장을 거듭하면서 일사불란하게 무대를 꾸미는 것은 분명 수없는 반복,출연자들의 기량,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무대설비와 기술 및 연출력 때문인 것 같았다. 놀랍도록 사실적인 무대미술과 조명기술로 휘몰아치는 눈보라,잘 익은 곡식들이 황금물결을 이룬 들녁,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등의 장면들이 순식간에 바뀔 때마다 「위대한 수령을 모신 인민의 행복과 충성이 다짐」을 형상화한 각양각색의 선동적인 춤과 음악이 새로 펼쳐지면 6천석을 꽉 메운 관객들은 열렬한 기립박수를 터뜨리곤 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19일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이 정치색이나 선동성과 전혀 무관한 가야금산조ㆍ서도민요ㆍ판소리 등을 같은 무대에서 펼쳤을 때 여전히 6천석을 가득 채운 청중들의 반응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오복녀씨의 『개타령』에서는 잠시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고 김덕수패 사물놀이가 신들린 듯한 소리로 공연장을 뒤흔들자 힘찬 박수로 응답하는 청중도 있었으나 「재청」이니 「앙코르」를 외치는 소리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박수치는 것 자체가 재청을 뜻하며 서울전통음악연주단의 연주가 싫다기보다는 지난 45년간 좀처럼 들을 기회가 없던 전통음악에 대한 일종의 「낯가림」이었음을 공연 후 만난 북한 문화예술인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사실상 북한이 자랑하는 대부분의 공연물이 음악ㆍ무용ㆍ연극 등 독립된 각 분야로 되어있기 보다는 혁명가극이나 민족가극,『행복의 노래』『영광의 노래』처럼 여러분야를 종합적으로 구성한 것들이고 보면 2ㆍ8문화회관의 무대규모나 시설도 쉽사리 이해가 된다. 김동수씨에 따르면 무대전체의 너비가 98m,높이 13m,깊이 48m이며 관객에게 보이는 무대의 너비는 28m.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은 한꺼번에 5백명이라도 거대한 무대장치와 함께 순식간에 등ㆍ퇴장시키기 위한 이동무대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씨는 또 『배우의 집중력과 음향ㆍ조명ㆍ무대장치 기술 등이 고도로 「조직」되지 않으면 이같은 무대를 인민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면서 무대미술담당자만도 20명,무대기술담당자는 5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난 75년 문을 연 2ㆍ8문화회관은 조선인민군협주단이 운영하는데 단장은 『김일성 원수님께 드리는 노래』를 작곡한 인민예술가 설명순씨. 모란봉구역에 있는 12만평방m의 부지에 연건평 8만평방m의 이 공연장은 각각 6백석ㆍ1천1백석ㆍ6천석짜리 극장 3개,분장실 64개,연습실ㆍ개별훈련실ㆍ종합연습실 58개 등으로 되어 있다. 그동안 약 1천명의 예술가와 음향 및 무대기술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 극장의 간판프로그램은 이미 1천회 공연을 돌파한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 성악ㆍ기악ㆍ무용ㆍ무대미술 부문으로 구성된 인민군협주단은 1주일에 닷새씩 주로 음악ㆍ무용종합공연을 갖는데 순회공연 후 배우들이 쉬는 기간에는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객석이 6천석이나 되는 초대형 공연장임에도 불구하고 음향상태가 매우 좋은 이유를 묻자 이 극장 기술담당 부관장 김동수씨는 『벽면설비도 잘돼 있지만 무엇보다도 수많은 마이크들이 가장 이상적인 자리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 극장 개관을 앞두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사흘동안 직접 소리를 들어가며 각 마이크의 위치를 일일이 지시해 주셨다』고 했다.
한편 평양의 여러 공연단체들은 나름의 전용극장을 근거지로 활동하되 필요에 따라 다른 극장을 이용한다. 조선음악가동맹 성동춘 부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피바다가극단이 혁명가극 『피바다』나 대중가요를 주로 공연하는 곳은 평양대극장. 민족가극 『춘향전』등 민요위주의 공연을 하는 평양예술단은 봉화예술극장,국립교향악단은 모란봉극장,영화 및 방송음악 연주와 녹음을 주로 하는 영화방송음악단은 국제문화회관,노동현장 공연을 자주 갖는 청년예술단은 청년중앙회관을 중심으로 각각 활동한다는 것이다.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로 유명한 만수대 예술단은 지난해 새로 지은 1천5백석 규모의 동평양대극장을 전용공연장으로 쓰고 있는데 무대(2천3백평방m)가 객석(1천8백평방m)보다 넓다. 이 극장의 지배인(극장장) 손경운씨는 『회전무대ㆍ요술무대ㆍ연속 이동무대를 모두 완벽하게 설치해서 음악무용종합공연에 전혀 무리가 없게 했다』면서 1년내 하루도 쉬는날 없이 공연하는데 2원(미화 약 1달러)짜리 입장권을 내고 들어오는 관객들로 항상 만원을 이룬다고 밝혔다.
또 공연장마다 귀빈석은 1층 객석의 중간보다 약간 앞쪽에 마련돼 있고 의자와 함께 테이블이 놓여 있는 점이 특이했다. 동평양대극장의 지배인 손씨는 『위대한 수령께서 오실 때는 붉은 주단을 다시 깔고 특별한 좌석을 따로 마련한다』면서 『우리 인민들에게 이처럼 잘사는 락원을 차려주셨는데 다른 사람들도 앉는 자리에다 모실 수야 없지 않겠냐』고 했다.
한편 교예(서커스)를 예술에 포함시키는 북한이 지난해 광복거리에 새로 지은 평양교예극장은 가장 대표적인 초현대식 공연장. 건평만해도 5만4천평방m에 이르는 3천5백석 규모의 이 교예극장은 수중ㆍ빙상ㆍ동물ㆍ일반 교예를 한자리에 앉아 관람할 수 있는 7개 입체무대를 갖추고 있다.<평양=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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