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산화시대,사생활 보호돼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국민을 상대로 한 인구조사가 1일부터 시작돼 한창 집행중에 있다. 10일까지 계속되는 이 조사결과는 장단기적인 사회ㆍ경제정책의 수립을 비롯,여러 가지 국가정책 입안의 기초자료로 활용된다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국민들로서는 성실하고 정확한 답변으로 조사에 응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다. 그러나 그런 국민의 자발적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정부도 그만큼 질문내용에서부터 과정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준비와 정성을 들여야 함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그러나 최근 센서스가 진행되는 동안 피조사자들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번 조사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마찰의 요인은 질문내용이 너무 구체적이고 은밀한 사생활 내용을 꼬치꼬치 캐묻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개인별로 이름과 주소를 밝힌 다음 직장이름ㆍ소속부서ㆍ직위를 묻는가 하면 5년 전 거주지,낳은 자녀와 생존해 있는 자녀수 등등 시시콜콜하게 물어 피조사자들이 응답에 선뜻 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감을 갖게 한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구조사란 것이 민주화된 외국에서는 사생활의 마지막 꼬투리까지 훑어내 정부통치의 수단으로 오용된다는 비판을 받기 때문에 가능하면 질문내용을 줄이고 직접조사를 삼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질문내용이 많고 상세할수록 조사에 대한 거부가 늘어나고 답변도 불성실해 결과도 부정확하고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 결국 막대한 노력을 기울인 조사가 본래 의도했던 기초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될 우려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에 덧붙여 정부가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이번 조사를 두고 불쾌감과 불안감을 느끼는 시민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자료로서의 목적외에 자신에 관한 비밀이 혹시 다른 목적으로 쓰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이 모든 자료가 전산강에 입력되어 철저하게 관리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러한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완성단계에 들어선 국가행정 전산망,내년부터 가동될 주민등록의 관리,부동산 관리,자동차 관리 등 국민들의 모든 행위에 관한 자료가 컴퓨터에 수록되도록 되어 있다.
뿐만 아니다. 회사의 사원관리에서 은행의 신용관리,크레딧 카드,서비스업계의 고객관리 등 국민 누구나가 전산화된 이른바 데이타 뱅크에서 헤어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업무의 능률화,정보의 다양화 등 기능적인 면에서 보자면 전산망이 우리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입력된 자료들이 엄격한 통제 아래 명시된 목적에만 이용된다는 전제가 지켜져야 계속 효력을 갖게 될 것이다.
개인의 이익에 반하여 이들 자료가 이용될 가능성이 추호라도 있을 경우 이런 첨단기술은 오히려 시민의 프라이버시를 옭아매는 무기로 악용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예를 이미 경험하고 있다.
불과 1년 전 경찰의 범죄수사용 컴퓨터가 기업의 신입사원채용 때 신원조회에 남용되는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공공기관의 자료가 이런 식으로 남용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은행 크레딧 카드를 사용하고 난 뒤 판매업체에서 고객의 신분을 파악하고 광고우편물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은행과 거래점간의 상행위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는 분명히 정보유출에 의한 사생활 침해의 예다.
간단한 예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사생활 내용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이처럼 여러가지 차원에서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개인에 관한 정보유출과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한 형편이다.
물론 현존 법체계로도 어느 정도는 장치가 되어 있으나 개인생활보호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특별법 제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와 관련,정부가 사생활보호법을 추진중이라고 하나 그 내용엔 많은 미비점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테면 정부기관에 대해 자신의 신상에 관한 정보열람권을 인정하면서도 많은 제한조항을 두고 있는 등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보청구권,잘못된 정보의 정정청구권,불리한 정보공개금지권 등도 보장돼야 할 것이다.
정보화시대의 초입에 들어선 우리 사회는 정보의 전산화기술이 국민들의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하고 정부와 민간부문의 정책입안과 추진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기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개인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