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 우리는 왜 안 주나요…누군 돈잔치, 누군 화딱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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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비슷한 대학, 학과를 나왔는데 돈 받는 건 천지차이죠. 첫 직장을 잘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국내 유통기업에 다니는 A(38)는 “대학 동기들은 기본이 한 장(1000만원)인 것 같은데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크다”며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다.

성과급 시즌을 맞아 직장가가 술렁이고 있다. 1년 전 SK하이닉스가 지핀 성과급 논란 이후 맞는 첫 지급 철인 데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충분한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성과급은 기업이나 부서가 경영목표를 달성했을 때 직원에게 현금·주식 등으로 지급하는 보수다. 국내에선 2000년 삼성전자가 처음 지급했다. 과거 성과급은 직장인에게 선물, 말 그대로 보너스였다. 주면 좋고 안 주면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고, 불만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문화였다.

주요 기업 성과급.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주요 기업 성과급.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하지만 지난해 1월 SK하이닉스의 4년 차 직원이 전체 임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성과급 규모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직원들은 사내·외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고, 기업들은 앞다퉈 성과급을 높이고 산정 기준을 공개하며 직원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실적이 좋았던 업계를 중심으로 성과급 경쟁과 신경전이 치열하다. 반도체 업계의 경우 지난해 12월 24일 삼성전자가 한 달 기본급의 200%를 특별보너스로 지급한다고 발표하자 1주일 뒤 SK하이닉스는 기본급의 300%를 특별성과급으로 주겠다고 응수했다. 그러자 최근 삼성전자 경계현 DS(반도체)부문 대표는 사내 간담회에서 “추가 보상 지급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둔 은행권도 마찬가지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 등 4대 은행들은 모두 기본급의 300%에 현금 80만~100만원을 더한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이런 발표가 날 때마다 직장가는 ‘돈 얘기’로 들썩인다. ‘SK하이닉스 부장급은 성과급으로만 1200만원을 받는다’ ‘은행 차장급은 최소 700만~800만원이다’ ‘삼성전자 과장급은 성과급이 4000만원이 넘는다’ 등이 그렇다.

역설적이지만 성과급은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10년 차 직장인 김모 씨는 최근 기본급의 100%인 약 300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적지 않은 액수지만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등에 올라온 게시물을 읽다 보면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했다. 그는 “회사가 반도체나 바이오 같이 뜨는 산업이 아니니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건 이해하겠지만 같은 연차에 3~5배 차이가 나니 이게 뭔가 싶다”며 “대표·임원들도 다 외부 출신이 차지하고, 공채가 잘 된다는 보장도 없어 스타트업을 포함해 계속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은 기업대로 고민이 깊다. 우선 20·30대 MZ세대를 중심으로 성과급을 높이고 산정 기준 등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부진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성과급을 지급하기 위해 지난해 말 자사주 약 11만주를 사들였다.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선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의 성과급을 보장해야 한단 점도 부담이다.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직원들은 조직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살지 않는다”며 “기업이 당장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할 수 없다면 실력있는 상사의 멘토링과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 도전적인 역할과 프로젝트 부여 등 직장에서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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