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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휴대폰 승부수' 첫발 삐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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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孫正義.일본명 손 마사요시.사진) 사장이 곤경에 처했다. 통신시장의 선두 자리를 넘보기 위해 내놓은 '승부수'가 '무리수'로 바뀌고 말았기 때문이다.

손사장은 "통신시장에서 NTT를 꺾고 일본 최대의 종합 통신회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는 이달 24일을 그룹의 사활이 걸린 '결전의 날'로 꼽아왔다. 기존 휴대전화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입 통신사를 바꿀 수 있는 '휴대전화번호 유지제도(한국의 번호이동성 제도)'가 이날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손 사장은 이를 계기로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려 선두를 탈환하겠다는 야심에 차있었다. 손 사장의 '소프트뱅크 모바일'은 9월말 현재 점유율이 16.3%로, NTT도코모(55.5%), KDDI(au.28.1%)에 이어 업계 3위였다.

손 사장은 제도 실시 하루 전인 23일 밤 기습적으로 '통화료 0엔' 이라는 파격적인 안을 내놨다. 손 사장이 내건 '기습안'의 내용은 소프트뱅크 가입자끼리는 월 기본료 9600엔만 내면 통화료는 물론 '짧은 메일(70자 이하의 메일)'도 공짜로 한다는 것. 또 향후 3개월 이내의 신규 가입자 내지 다른 통신사로부터 옮겨 오는 고객에게는 월 기본료를 2880엔으로 고정하겠다고 했다.

이 기습 발표에 경쟁사들은 '악' 소리를 났다. "소프트뱅크가 두 경쟁사의 고객을 상당 부분 빼앗아 오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내부에서 문제가 터졌다. 제도 실시 후 첫 주말인 28일과 29일 소프트뱅크의 전산 시스템이 다운된 것이다. 한꺼번에 몰린 고객을 운영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는 바람에 고객도 잃고 시장의 신뢰도 잃고 만 것이다.

손 사장은 30일 저녁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스템 장애로 '소프트뱅크' 휴대전화 가입자는 물론 경쟁사인 NTT도코모, au 측에 피해를 끼친 점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밝혔으나 후유증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담당 부처인 총무성은 30일 소프트뱅크에 엄중 경고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소프트뱅크 측이 시스템 장애의 원인을 고객에게 설명하면서 "워낙 많은 고객이 몰리다 보니"란 표현을 쓴 것을 두고도 NTT도코모와 au측이 문제 삼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확인 결과 소프트뱅크 가입을 해지하고 다른 통신사로 옮겨 가려는 고객들이 많아 정보 시스템 장애가 생긴 것"이라며 "손 사장은 엉터리 중의 엉터리"라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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