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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로사업 7순노인의 죽음(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첫월급을 타면 속옷도 사드리고 효도하려 했는데….』
10일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란병원 영안실. 영세민취로사업장에서 쓰러진 아버지 이종길씨(77)의 빈소를 지키는 막내아들 관우군(18)의 목이 멘다.
8순을 목전에 둔 고령인데도 이노인은 찜통더위속 땡볕에서 낫을 들고 홍제삼변의 잔디를 깎다 변을 당한 것이다.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일하고 받는 일당은 8천원. 가족들이 말리고 구청에서도 너무 나이가 많다고 거절했으나 막무가내였다.
10일은 그동안의 품삯 5만6천원을 받는 마지막날이었으나 이노인은 한푼도 손에 쥐어보지 못한채 이날낮 쓰러져버린 것이다.
『그렇게 말렸는데도 고집을 부리시더니….가난이 죄지요.』
가벼운 저혈압에다 오른팔중풍증세는 있었지만 평소 건강은 썩 좋은편이었다는게 가족들의 말.
고향인 강원도 원성에서 농사를 짓다 12년전 상경한 이노인이 자리잡은 곳은 서울 북가좌동의 보증금 5백만원에 월세 4만원짜리 단칸방.
사별한 전처소생 4남매와 새부인 이씨(52)와의 사이에서 낳은 관우군 등 5남매를 두었으나 3남매는 결혼했고 딸(23) 등 4식구였다.
상경후 부인 이씨가 병원ㆍ빌딩의 청소부로 일하고 딸은 얼마전부터 공장에 다녀 근근이 견뎠다.
공고 졸업반인 관우군도 지날달부터 취업실습을 시작,이제 큰 씀씀이는 없어져 한숨 돌릴 만해진 터었다.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다고 늘 부담스러워 하셨어요. 그놈의 돈이 뭔지….』
과소비풍조속에 수백만명이 피서철 바캉스를 즐기기위해 바다로 산으로 떠났다는 서울도심에서 일당 8천원을 벌기위해 뙤약볕을 마다않고 개천가의 잔디를 깎다가 숨져간 희수노인.
쉽게 벌어 쉽게 쓰고 쉽게 살려는 요즘 젊은이들은 이노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한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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