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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류연민」이 필요한 사회/김두겸(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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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말복을 며칠 앞두고 보니 다시한번 그 잔혹한 가축도살이 연상된다. 한발짝만 길에 나서면 모두가 하나같이 살기등등한 험한 세상인데,신문사회면을 보면 온통 끔찍한 살인사건 투성이인데,그까짓 하찮은 개나 소의 잔혹도살이 뭐 그리 대단한 건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기로 가득찬 사람의 심성을 바로잡기 위해 우선 동물학대 금지등과 같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는 제안이 사회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연민이나 생명의 존엄성을 마음속 깊이 심어주는 것도 사람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살기를 없애기 위한 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하찮은 미물일망정 죽이는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곧 살인의 충동성을 잠재우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성 본질자체를 이같은 살생금지를 통해 개혁해보자는 운동은 일찍이 일본에서 시도된 적이 있다. 17세기말엽 도쿠가와막부 5대장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덕천강길)시대­.
막부가 들어선지 1백년이 지나면서 세상은 어느덧 태평성대를 맞는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에선 전국시대의 살기가 남아 살인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그는 대소를 막론하고 생명이 있는 것을 소중히 하는 것은 곧 이 세상의 살기를 없애는 첩경이라고 보고 일체의 살생을 금지하는 「생류 연민의 영」을 발동한다.
처음엔 단순한 동물보호령과 같은 것이었다. ①병든 말을 버리지 말 것 ②개,고양이에 대한 매질등 학대금지 ③어패류,날짐승에도 애정을 가져 잡아먹지 말 것등.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도가 강해진다. 낚시도 금했고 심지어 새 사냥은 유배형에 처했다.
그는 특히 개를 끔찍히 위했다.
모든 개는 등록을 의무화,개 등록증을 발급받도록 했고 개를 버리면 유배,개를 때려 잡으면 사형에 처했다. 자연 시중에는 개가 들끓고 개싸움도,개의 사랑행위도 잦아진다.
그렇다고 개싸움등을 말리기 위해 몽둥이나 밧줄등을 쓰는 것은 개를 더욱 가련케 하는 것. 여기서 고안된 것이 개에 물을 끼얹는 방법이다.
각 마을마다 대형물통을 비치케해 그런 경우에는 물을 부어 말렸다.
길거리에 개가 들끓다보니 사람의 통행이 매우 번거로워 진다. 특히 높은 사람의 긴 가마행렬은 몹시 고통스럽다. 호위병들이 개를 치우려고 손짓발짓 다 하지만 개들이 오히려 사람을 사람취급 않는다. 때릴수가 없으니 결국은 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영주들의 나들이 때는 호위병들이 언제나 소금에 절인 정어리를 갖고 다녔다.
개에 먹이를 줘 길을 트게 하는 것이다.
개를 과잉보호하다보니 주인없는 들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암수 두마리의 번식률을 봄 가을 네마리로 보면 1년반 후엔 새끼가 새끼를 쳐 모두 1백52마리나 된다. 암수 2천마리라면 자그마치 25만2천마리. 아무리 태평성대라지만 이 많은 들개를 일반 백성들이 먹여 살리기란 여간 벅찬 것이 아니다.
막부는 어쩔 수 없이 이들 집없는 불쌍한 들개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단위 개단지를 세군데나 조성했다. 가장 큰 막부직영 개단지 규모는 자그마치 여의도 반크기인 16만여평. 25평짜리 2백90동,7평반짜리 2백95동,새끼개 보육소 4백59개동을 지었다. 이른바 초호화 개아파트단지다. 여기에 수용된 개는 모두 10여만마리.
이같은 대규모 개아파트단지 조성때문에 막부의 재정은 거덜이 났다. 수용된 10만여마리에 대한 식비도 엄청나 주식인 쌀만도 하루 6백60가마나 필요했다. 자연 시중 쌀값 폭등에도 일조를 했다.
동물학대금지를 통해 인간심성의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잔혹성을 영원히 잠재우겠다는 당초의 취지도 도가 지나쳐 그의 죽음과 함께 일반백성의 생류에 대한 연민은 오히려 생류에 대한 학대로 급반전 되어버렸다.
이 예는 좀 지나친 감이 있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것에 대한 연민의 정은 적어도 생명의 존엄성을 인식케 해주는데 플러스적 역할을 한다는 원리는 교훈으로 삼을만한 것이다. 하찮은 동물일지라도 잔혹한 도살을 금지하는 것은 곧 사람의 마음 깊숙히 숨어있는 살기를 외부로 표출시키거나 고취 또는 발호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보면 동물학대나 잔혹한 도살을 법적,행정적 규제를 통해 금지시키는 것도 요즘의 각박해져 가기만 하는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꼭 시도해 봄직 하기도 하다. 다행히 정부는 사람들 보는데서 개,고양이등을 때리거나 학대할 경우 경범죄 처벌법을 적용하겠다고 입법예고하고 있다. 보신탕을 위해 개를 잔혹도살할 때도 최고 29일까지 구류시키겠다는 방침이라고 전한다.
방침만 정할 것이 아니라 한시바삐 실행에 옮겨야 할 것 같다. 가뜩이나 인성은 본래 악하다는 순자의 성악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려고 하는 순간이다.
세상이 더 험악해지기 전에,모두가 다 미치기전에 사소한 것에서부터,가까운 것에서부터,그리고 하찮게만 보이는 동물학대 금지에서부터 시작하는 인간성 회복 캠페인이라도 범국민적으로 한번 벌여보면 어떨까.<국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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