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한 돈줄 막아야" 한국 "필요한 조치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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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19일 내내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 말을 아낀 것으로 전해졌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 채 남북 경협에 대해 원론적 수준의 얘기만 했다고 한다.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구체적인 거론을 피했다.

다만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지원하는 금융과 돈줄을 막는 게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며 대북 제재에 한국이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했을 뿐이다.

남북 경협에 대한 의미 있는 발언은 오히려 반 장관의 입을 통해 나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두 사업을 안보리 결의와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합되게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보리 결의만 얘기해 왔던 기존 정부의 입장보다 한 발 더 나간 셈이다. 반 장관이 얘기한 '국제사회의 요구'는 미.일의 요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반 장관은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마련한 금강산 관광 정부보조금 지급 중단 같은 구상들을 설명했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는 "반 장관이 우리 측 구상을 설명했으나 라이스 장관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라이스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장관을 각각 만나 두 사업을 거론하지 않은 것을 '태풍의 눈'으로 비유한다. 그는 미국을 출발하기 전 '연합 세력(미.일과 한.중)이 북에 엄청난 압박을 가해야 한다'(15일.폭스뉴스 인터뷰)는 취지로 발언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선 두 사업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라이스 장관으로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이 시급하다 보니 두 사업의 얘기를 꺼내 미리 마찰을 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외교 전문가들도 "머지않아 미국이 외교 채널을 통해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며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개성공단은 우리 측의 미세조정을 수용하더라도 금강산 관광에 대해선 전반적인 점검을 요구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한국의 PSI 참여 문제가 정리되는 대로 북한에 4억5000만 달러 이상의 현찰이 들어간 금강산 관광을 놓고 한.미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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