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뺨 맞고도 미소 짓는 게 포용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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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시장에서 예상됐거나 예고된 충격은 충격이 아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한 직후 한국의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동요하지 않고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였던 것은 북한 핵실험이 미리 예고된 것이었고, 그 예상이 이미 시장에 반영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장에서는 위험조차 상품처럼 거래되고 가격이 매겨진다. 보험업이 바로 그것이다. 또 기업 활동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리스크를 분산하고 내부화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사고의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 즉 위험도가 증가했다는 것 그 자체는 비용 상승 요인은 될지언정 경제활동을 반드시 위축시키는 것은 아니다.

리스크에 상응하는 수익만 보장되면 전쟁터에서도 사업을 하는 것이 투자자들이고 기업가들이다. 통제 가능한 위험은 경제활동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북 핵실험 이후 한국 경제가 지금까지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직 상황이 통제되고 있다는 믿음이 시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위험(리스크)과 불확실성을 구분한다. 위험은 사고의 확률을 알고 있는 경우를 의미하고, 불확실성은 그 확률조차 알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불확실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불확실성은 불안으로 이어지고, 불안한 기업가들은 투자를 하지 않게 되고 불안한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이게 된다. 북한의 핵실험 뒤 한국 경제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리스크가 아니라 불확실성이다. 한국 경제가 지금의 핵 위기를 무사히 넘기려면 한국 경제에 만연돼 있는 불확실성을 조속히 걷어 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과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이미 한국 정부의 통제 밖에 있다. 아니 우리가 통제할 수 있어야 했는데 무능한 정부가 이를 놓쳐 버렸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나약하고 모호한 대북 자세는 불확실성을 더 높이고 있다. 북한이 대한민국의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핵폭탄을 만들었는데도 정부.여당은 포용정책을 포기하면 남북 긴장관계가 조성되고 경제가 망가지니까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자고 한다.

뺨을 때린 상대방에게 계속 미소를 지으면서 돈을 대주는 것이 어떻게 포용일 수 있나. 그것이 어떻게 전쟁 방지책이 될 수 있나. 그것은 패자의 비굴한 억지웃음이고 뇌물일 뿐이다. 남북 긴장관계가 한국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지난 50년 동안 남북 긴장관계 속에서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전쟁의 위험이 한국의 경제적 발전을 막지 못했다. 그것은 당시 북한의 전쟁 위협이 견고한 한.미 방위조약을 기반으로 우리가 자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던 위험이었지 지금과 같이 우리 손을 떠난 불확실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력이 강해질수록 대한민국에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경제적 요구를 넘어 나중에는 정치.군사적 요구까지 해올 것이다. 그들의 부당한 요구에 불응하면 '무자비한 타격'을 입히겠다고 협박할 것이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의 무리한 요구의 끝이 무엇일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북한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가 당선되면 전쟁하겠다고 나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전쟁이 두려워 북한이 원하는 후보를 뽑아 줘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주권국가가 아니다.

핵폭탄의 위협에 인질로 잡힌 나라, 정치.경제적 주권을 지킬 수 없는 나라, 전쟁을 피하기 위해 북한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나라, 그리고 그것을 평화라고 착각하는 정권이 있는 나라는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한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경제활동과 투자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긋고 확고한 국제 공조체제 속에서 위기를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모습을 보일 때 한국 경제는 비로소 북핵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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