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비 양극화, 사회 양극화의 한 단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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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학교 학생들이 만들어 붙인 과외 전단지. 과외비가 20만원이라고 정확히 명시하고 있다.

아쉬운 대로 용돈이라도 벌자는 학생들의 마음과, 형편이 안 되는 학부모들의 '이거라도 해야… '라는 심정이 만난 것. 반면 일부 지역에서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고액 과외가 극성을 부리고 있어 과외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는 사회 양극화의 극단적인 단면일까 아니면 시장 원리의 자연스런 반영일까.

◇과외비 덤핑, 싸게 더 싸게=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중인 노민지(24.가명) 씨는 두 명의 고등학생에게 과외교습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가르치고 25만 원씩 받아 월소득은 50만 원. 노씨는"20년 전에도 서울대생 과외비가 30만 원은 됐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가격이 내리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그나마 이런 자리를 구하는 것도 힘들다고 말한다.

'20만 원에 주4회, 무료 샘플강의 1회' 2호선 지하철 의자 틈 사이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전단지 광고다. 명문대생들의 과외 공급이 넘쳐나는 신림.봉천동 일대와 신촌 인근 지역에서는 과외비가 30만 원이 넘어가는 경우가 드물다.

게다가 서울대.연고대 재학생이 아닌 경우에는 20만 원에 주 3~4회, 그리고 과외시장에서는 전례 없던 후불제 과외교습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학원에 다니면서도 과외 하나쯤은 필수로 하는 것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 될 정도다.

구로구 개봉동에서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조미숙(46.가명) 씨는 "효과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고액과외를 시킬 형편이 안되니 싼 과외라도 시키게 된다"고 말한다. 일주일에 세 번씩 방문하는 대학생에게 월 25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성적 향상에 크게 도움은 안 되지만 이렇게라도 시켜야 마음이 편안하다고 덧붙였다.

◇100만 원 이상 부르는 게 값= 한편 일부에서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고액 과외가 극성이다. 서울대 공과대학에 재학중인 최민준(26.가명) 씨는 강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단과대학 건물 앞에 대기하고 있던 BMW 뒷자리에 앉아 여유있게 과외학생의 집이 있는 방배동 서래마을로 이동한다. 일주일에 2시간씩 두 번 수업을 하고 최씨가 한 달에 받는 돈은 무려 500만 원. 최씨는 "처음에 150만 원으로 시작했지만 아이의 성적이 계속 오르면서 지금의 500만 원까지 오게 됐다"면서 중학생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성적이 계속 오르면 과외비도 비례해서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대 사범대를 휴학중인 이미영(25.가명) 씨는 상도동에서 입주과외를 한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SAT(미국대학수능시험)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있는 학생을 가르치고 월 1500만 원을 받는다. 이씨를 고용한 집에서는"단기간에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에 비싼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며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성적을 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실제로 성적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성적을 올려준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수백만 원대 과외 제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학생 과외뿐만 아니라 그 영역을 입시학원 전문 강사로 확대시키면 과외비는 부르는 게 값이 된다. 강남에서 SAT를 배우려면 학원비만 월 600만원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집 아이도 다른 집 아이만큼은 시켜줘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해 너도나도 과외교습을 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과외비 양극화, 왜?=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외비 양극화 현상이 사회 양극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 소장은 "사회 양극화의 가장 극단적인 단면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득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과외비의 특성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는 않지만, 사교육비가 전체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는다. 가정 형편이 극히 어려운 일부 가정을 제외하고 대개 사교육비를 지출한다고 보면, 현재의 양극화된 소득 구조 하에서는 사교육비 지출 금액이 가계 형편에 따라 극단적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재의 과외비가 양극화돼 있는 것은 맞지만 일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입시전문가 조남호(29)씨는 "수백만 원대의 고액과외는 전체의 1% 정도에 해당하는 현상일 뿐"이라며 "변화하는 입시제도에서는 과외교습을 받는 것이 성적향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과외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낮아지고 이에 따라 과외비도 계속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석훈(42)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외비 양극화 현상을 사회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시장경제의 원리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강 교수는 "차별화된 서비스에 대한 차별화된 보상일 뿐이며 합당한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교습자와 지급할 의사가 있는 수요자가 만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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