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과 함께 와인 한잔 '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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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m.net빌딩 뒤편. 빨간 간판에 쓰인 자그마한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Wine & Friends(와인과 친구들)'. 와인과 친구를 하라는 것일까, 아니면 와인과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일까.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는 곳이다.

와인바 입구. 선택의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번에 오를 것인가, 상아색 대리석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당도할 것인가. 멋을 아는 이라면 계단을 무심코 지나칠 수는 없을 듯하다.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기운을 감지하게 된다. 주방으로 연결되는 바는 전면을 벽돌로 치장하고, 그 반대편은 순도 100%의 레드 컬러로 벽을 마감했다. 사이사이 자그마한 공간을 이용한 책꽂이는 소박한 멋을 풍긴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로 된 와인 저장고는 또 어떤가.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은 물론 칠레·미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와인신생국들까지 300여 종의 와인이 층층이 쌓여있다. 숫자판에는 온도 17℃·습도 72%라고 표시돼 있다. 와인을 마시기에 최적의 상태란다. 불투명한 유리로 짜인 방도 있다. 소규모 그룹을 위한 작은 룸으로 LCD 모니터가 갖춰져 있어 회의도 가능하다. 이곳을 즐겨 찾는 대부분이 20~40대의 비즈니스 맨임을 감안한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돋보인다. 와인은 서로 통하는 사람끼리 모여 함께 즐겨야 제격이다. 그러기에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고, 나무·벽돌과 같은 자연소재를 이용해 친근함을 줄 수 있어야하고, 빨간색의 포인트 컬러를 사용할 것. 이곳 오너가 인테리어 시공자에게 부탁한 세 가지 요구사항이다. 와인과 친구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Wine & Friends 대표는 대단한 와인애호가다. 지금까지 모은 와인 컬렉션만도 무려 200여 병. 그 중 로마네 콩티(1983)와 페트루스(1992)는 보물 1호다. 그가 처음 와인을 입에 댄 것이 1976년. 딱 30년 전이다. 사업상 해외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외국 손님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자연스레 와인과 친해지게 됐고, 10년쯤 지나고 나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와인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국내 대기업 임원이었다. CEO출신인 그가 퇴임 후 와인바를 경영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하지만 와인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애정은 주저함 없이 그를 '와인 전도사'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와인은 남녀노소가 다함께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문화다.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분 좋게 마실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음식 궁합까지 맞아떨어지면 그야말로 완벽하다"고 와인 예찬론을 펼쳤다.

그래선지 Wine & Friends 메뉴선택에는 특별함이 있다. 요리에 따라 와인을, 와인에 따라 요리를 추천해주는 것이다. 이탈리아 최고 레드 와인으로 꼽히는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뚝배기 파스타, 스페인 와인 무가는 오징어 먹물을 이용한 리조토, 프랑스 포이악 지역의 유명 와인 린치바쥐는 양갈비와 어울린다. 이러한 서비스도 와인 전문가 소믈리에와 이탈리아 요리 경력 12년인 베테랑 주방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깊어가는 가을 밤, 클래식 재즈의 선율 속에서 이따금 부딪히는 와인잔 소리가 청아하다. 이때가 정말 중요하다. 시선은 잔에 담긴 와인이 아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볼 것. 와인이 '신의 물방울'로 일컬어짐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까닭이다.
문의 02-547-7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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