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마을 영아 살해 남편은 연기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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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 아니라면 ① 아내 만삭 모를 수 있나 ② 혼자 세 번 출산 가능할까
공범이라면 ① 왜 본인이 직접 신고 ② 아내 자백에 운 이유는

서울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과 관련, 범행을 자백한 베로니크 쿠르조(38)에 이어 남편 장루이(40.사진)에게 의혹이 쏠리고 있다. 프랑스 수사당국은 부인이 아이를 1999, 2002, 2003년 세 차례나 임신.출산을 반복했는데도 이를 까맣게 몰랐다는 남편의 진술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프랑스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사회면 톱기사로 다루고 '아내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는 남편의 말은 미심쩍다'고 14일자(현지시간)로 보도했다. 르피가로는 '장루이의 혼란스러운 부인(否認)'이라는 기사와 '부인의 형량은 정신감정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박스 기사를 내놓았다. 리베라시옹은 '그렇다면 남편은 무엇을 알고 있었나?'라며 의문을 던졌다.

장루이는 현재 살인공모 혐의로 수사판사(중범죄를 담당하는 검사격)에게 넘겨져 조사를 받고 있다. 프랑스 측은 한국 측에 영아 시체의 인도를 요청하고, 현장 조사를 위해 3명의 수사관을 한국에 파견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남편에게 쏠리는 의혹=프랑스 수사당국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베로니크는 임신 사실을 남편에게 숨기기 위해 ▶헐렁한 옷을 착용하고 ▶세 차례 출산을 모두 대낮에 자신의 집 목욕탕에서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가 1m60㎝의 키에 약간 뚱뚱한 체형이지만 만삭의 아이를 옷 하나로 감출 수 있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또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간 상태에서 아무도 모르게 집에서 출산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에 따라 남편이 어떤 형태로든 부인의 임신 사실을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장루이는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출장을 자주 가지도 않았던 것으로 수사 결과 밝혀졌다. 리베라시옹은 장루이가 거의 매일 퇴근했으며, 부부가 다른 방을 쓰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장루이의 '연기력'도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그는 올 5월 아마추어 연극 무대에 올라 "'미스터리한 사건(le noir)'은 너와 잘 어울려"란 제목의 작품에서 형사역을 맡아 연기했다고 일간지 르피가로는 전했다.

최근 부인이 영아 살해 사실을 자백했을 때 장루이는 부인을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현장에 있던 한 수사관은 "당시 그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 '결백'의 흔적들=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수사진은 장루이의 공모 혐의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사건을 최초로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남편이라는 점이다. 그의 변호사인 모랭은 "장루이가 사건을 알고 신고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장루이가 서래마을 자신의 집을 수차례나 친구들에게 빌려줬던 점도 그의 공모 가능성을 낮게 하고 있다. 냉동고에 영아의 시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 같은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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