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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친구” 본때 사정/공직비리 어떻게 어디까지 파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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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보보고 엉터리 조사애로/투기지역 역내사 부정확인/정치인 비리 캐냈지만 오해살까 발표 늦춰
수면하에서 움직이던 청와대 특명사정반의 활동결과가 김상조 전경북지사의 검찰수사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김 전지사의 검찰수사는 그가 노대통령과 경북고 32회 동기동창이자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지냈다는 점과 그의 투기행각이 경북지사 부임직후부터 상습화됐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명사정반은 지난달 12일 노대통령의 「통치사정」이란 명을 받아 발족한 후 가장 먼저 고위 공직자의 비리 내사에 착수했다. 이미 풀어질대로 풀어진 공직자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이를 사회분위기 쇄신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고위공직자의 일벌백계야말로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직 장ㆍ차관에서부터 중앙부처국장급,정부투자기업의 임원급을 하나하나 내사하면서 사정반은 곧 한계에 부닥쳤다. 이미 각종 사정ㆍ정보 기관을 통해 수집해 놓은 공직자들에 대한 정보가 95%이상 엉터리였기 때문. 유능하고 깐깐한 모범 공무원들이 부패케이스로 분류되어 있는가 하면 관계조직에서는 지탄받는 인사가 청렴한 것으로 보고된 케이스가 너무 많더라는 것이다.
이에 사정반은 제도사정기관의 정보나 투서,첩보에 의한 투망식 수사가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자칫 공직자사회에 음해풍조를 조장할 가능성을 우려,이른바 「기획내사」로 사정의 방향을 바꾸었다.
「기획내사」란 예를들면 특정 부동산 투기지역을 파고들어가 소유주를 하나하나 점검해 먼저 그만한 부동산을 가질만한 사람은 제쳐놓는다. 그다음 연령ㆍ재산규모ㆍ직업 등으로 봐 도저히 그런 재산을 갖기 어려운 사람이 소유주로 되어있는 케이스는 철저히 정밀내사를 한다. 파고들어가 보니 배후에 공직자ㆍ전문투기꾼이 수두룩하더라는 것이다.
이중 질이 좋지 않은 공직자는 공직추방ㆍ형사입건하고 투기꾼은 세금으로 다스리거나 실정법으로 걸려 들어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인 김상조 전지사는 투기행각이 너무 명백히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심지어 업자와 결탁해 이권에 개입하는가 하면 시장ㆍ군수 임명과정에서 매직한 흔적까지 포착됐다.
특명사정반은 김 전지사의 비리증거를 지난 5월말 잡은 후 노대통령에게 즉보하지 않고 묵혔다가 6월19일 다른 공직자 비리와 함께 보고했다. 왜냐하면 김 전지사가 노대통령의 가까운 동기동창이라 섣불리 보고했다가는 노대통령의 반응이 어떨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담담하게 『성역을 두지말고 철저히 증거위주로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과 특명사정반으로서는 「사정의 칼」이 얼마나 단호한가를 알려야 할 필요성도 느꼈을 것이다.
특명사정반은 이번에 퉁치사정을 하면서 그동안 정부에서 벌여왔던 일반 사정활동이 얼마나 허술했었는가를 절감했다.
김 전지사는 지난 88년 5월 지사부임 직후인 88년 6월 제주도에 아들의 명의로 밭 1천55평을 구입한 것을 비롯,9월에는 구미시의 임야 1만7천8백평을 3세된 손자명의로 구입했고 10월에는 서울 상계동의 밭 5백21평을 구입했다가 89년 7월 되팔아 전매차익 3억8천3백만원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89년 6월에는 부동산 투기억제 지역인 제주도 서귀포시의 논 1천3백59평을 구입했다.
김 전지사의 비리와 부패소문이 이토록 대구지방엔 일찍부터 파다했는데 왜 중앙의 사정기관에는 「좋은 정보보고」만 올라 왔었는가 하는 점이다. 김 전지사가 해경대장과 청와대 치안비서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사정기관의 관리가 그랬었다면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정반이 내사과정에서 또 한번 놀란 것은 정치인의 비리문제. 상당수의 정치인들이 땅투기나 다른 비리에 연루되어 있음을 발견했으나 자칫 잘못 건드렸다가는 정치적 탄압이란 오해를 받을 수 있고 또 정치인들이 사정을 공안정국 때처럼 정치문제화하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유로 일단 뒤로 미루어 놓았다.
그러나 사정반은 정치인이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정치인 비리는 금년 하반기에 집중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때 민자당이 내각제개헌을 본격 추진한다면 사정이 정치구도화한다는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밖에 불로소득에 근거해 호화사치 생활을 일삼는 4백여명은 내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명단을 공개해 사회에 경종을 울리면서 국세청으로 하여금 탈세여부를 조사케 할 방침이다.
특명사정반의 부동산투기 내사활동은 ▲컴퓨터 조회 ▲현지답사 및 현장확인 ▲본인 구증및 관련자 증언채취작업등 3단계로 이뤄지고 있다.
컴퓨터조회 작업은 이미 완료했고 증거확보를 위한 현장확인은 6월말까지 완료할 방침이다.
본인구증및 관련자 증언채취 작업이 가장 어려운 작업인데 부동산투기와 금품수수 등이 워낙 교묘한 방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정반은 수표 추적까지 벌이고 있다.
현재 특명사정반은 부동산투기 혐의가 짙거나 주위로부터 심한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20∼30명의 중앙부처 국장급이상 고위공직자를 추방대상으로 선정해 우선 21일의 차관급인사에서 3명을 탈락시켰고 나머지는 국장급 후속인사에 포함시켜 처리할 방침이다.
특명사정반이 사정활동 결과를 별도의 발표를 거치지 않고 인사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것은 공직사회에 지나친 충격을 주어 경직시키지 않으면서 해이된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
특명사정 활동의 목적은 결국 공직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우습게 보고 투기로 축재만 하려는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척결해 선량한 공직자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친 사정활동이 공직사회를 경직된 분위기로 몰아가 무사안일이라는 또다른 병폐를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으나 공직자사회 기강확립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키 위해서는 이같은 부작용은 감수할 수밖에 없으며 공직사회와 과소비를 선도하는 불로소득 계층을 단속하면 사회전반의 분위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특명사정반의 판단이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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