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일군 '문화 성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1일 오후 9시30분. 컨테이너 화물차가 성남아트센터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을 떠나 온 오페라 '레이디 맥베스'의 무대장치였다. 예정보다 이틀 늦어 공연 전날에야 겨우 도착했다. 무대기술부 이현우 차장은 "태풍 때문에 출항을 못해 벌어진 일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비상이 걸렸다. 당장 이튿날 오전 오페라 리허설이 있고 오후엔 본 공연이 있다. 무대기술부 전 직원이 달라붙어 밤새도록 땀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새벽 5시. 모든 무대장치 세팅이 완료됐다. 몇시간 뒤 오페라하우스 리허설 현장. "브라보! 무대·조명·음향장치 모두 세계 정상급." 지켜보던 러시아 현지 스태프가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성남아트센터는 지난해 10월 14일 개관 이래 예술계가 놀랄만한 여러 공연·전시를 쏟아냈다. 이 때문에 서울의 예술 애호가들은 성남을 찾아야 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성남아트센터의 인기는 작품성도 작품성이지만 쾌적한 관람 분위기를 위해 전력투구한 직원들이 숨은 공신이었다.

▶세계 최고 아티스트를 성남으로
= 공연기획부 정민혁 과장은 개관 1주년 기념공연을 기획하면서 냉온탕을 오가는 짜릿함을 느꼈다. 오늘(10일) 오후 8시 공연되는 러시아 여류 피아니스트 니나 코간의 섭외는 '냉탕'이었고, 14·15일 무대에 오르는 발레리나 강수진 및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은 '온탕'이었다. 정 과장은 니나 코간과 통화하기 위해 두달 전부터 노력했다. 집전화로 걸면 번번이 가족들이 "나중에 걸라"했고 휴대전화는 아예 불통이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쇼스타코비치 작품의 뛰어난 연주자인 그에게 초청이 잇따라 벌어진 일이다.

반면 2~3년후 공연 선약으로 유명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공연 성사는 의외였다. 세달 전부터 본격 접촉을 시도했는 데 일정 및 공연료 협의가 술술 풀렸다.

공연기획부는 1~2년 후 공연을 미리 준비한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공연 단체를 성남에 '모실 수' 있다. 김승배 부장 및 직원 7명이 프로듀서가 돼 공연 2~3개 씩을 책임진다. 기획-섭외-공연준비-홍보-마케팅. 한 공연의 처음과 끝을 도맡는다.

성희경 씨도 5개월여 준비 끝에 지난달 초 중앙일보와 공동 주최로 제1회 성남국제무용제를 성황리에 치러냈다.

▶전시는 아이디어다
= 문화사업국 노재천 국장실 한쪽 벽은 온통 전시 및 이벤트 포스터로 도배됐다. 지난 1년간 문화사업국이 치러온 행사들이다. 이번 개관 기념으로 '현대매체 미술전'을 연다. 회화·비디오영상물·조각·조형물이 아트센터 미술관 및 야외공간에 펼쳐진다. 고 백남준의 아내 구보다 시게코 및 국내 정상급 작가 60여명 참여한다. 빛의 계단에선 모빌 등 설치미술 작품이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형옥 전시기획부장은 "현대 매체의 신기술과 전통적 예술성이 만나 새로운 예술 형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라고 말했다.

성남아트센터의 전시는 독특하다. 지난 7월 성남시 시승격 33주년 기념으로 '성남의 얼굴전'을 기획했다. 성남의 어제와 오늘을 사진·회화·영상으로 밀도높게 표현했다는 평을 들었다. 개관 기념전인 '소통과 접촉'은 작가가 창작과정을 대중에게 보여주며 함께 작품을 만든다. 내년엔 아트센터 야외공간에서 주말마다 '아트마켓'(미술시장)을 열 계획이다. 작가들이 자신의 부스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직접 판매한다. 부대행사로 행위미술 퍼포먼스가 흥을 돋운다. 주민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지난 1년 성남아트센터의 주요 공연 및 전시
2005년 10월 몬테카를로 발레단 '신데렐라'(한국초연)
11월 오페라 '파우스트'(자체 제작)
2006. 1월 피카소.로댕과 떠나는 유럽미술여행전
2월 앤드류 맨츠 바이올린 콘서트(한국초연)
4월 메조소프라노 안네소피 폰 오터 리사이틀(한국초연)
오페라 '마술피리'(자체 제작)
5월 세계 어린이화가 EQ이야기전
7월 뮤지컬 '미스 사이공'(한국초연)
시승격 33돌 성남의 얼굴전
9월 1회 성남국제무용제(중앙일보 공동주최)

프리미엄 조한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