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물리학자 "실제위협보다 과시용인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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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계의 중심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이자 명지대학교 총장인 정근모 박사의 북한 핵실험 발표와 관련한 과학자로서의 견해를 10일 매일경제가 보도했다.

정 총장은 미국 명문 MIT에서 핵공학 교수를 거쳐 국제원자력기구(IAEA) 한국 대표를 역임하는 등 핵물리학 분야 권위자이자 원로 과학자다.

-북한 핵실험 발표를 어떻게 평가하나.

▶상당히 초보적인 단계로 실제로 핵폭탄 제조 능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학자로서 보면 북한 핵실험은 45년 기술을 반복한 상당히 초보적인 상태로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가장 원시적인 1단계 핵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핵실험을 보더라도 북한이 지금까지 얼마나 고립돼 있었는지 세계적인 과학기술 발전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 핵실험은 기술적으로 어떤 단계이며 어떤 의미가 있나.

▶북한이 지하 핵실험을 한 것은 공식적으로 이번이 처음이고 초보적인 단계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북한이 핵폭탄 제조 능력을 가졌다거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 위해서는 탄두를 가볍게 만들어 폭발물을 목표 장소까지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는 비행체 설계 능력이 필수적인데 북한은 핵 폭발 물질을 장거리로 보낸다거나 유도탄에 실어 보내기 위한 설계 능력이 부족하다. 단지 자신들도 핵실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미국이나 일본 등과 협상할 때 유리한 입장을 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실험으로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북한이 실험에 사용한 폭탄은 45년 미국이 일본에 떨어뜨린 폭탄처럼 크기가 커서 목표치까지 정확히 이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할 수 없는 만큼 북한이 핵보유국이 됐다고 판단하기는 성급하다. 이번 북한이 핵실험을 한 상태에서 보유할 수 있는 핵폭탄은 초기 핵폭탄처럼 비행기로나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지하 갱도에서 핵실험을 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80년대 IAEA 한국 대표로 있을 때부터 계속 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더군다나 70년대 미국 원자력 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고립되고 가난한 나라가 어떻게 핵 폭발 물질을 개발해 정치외교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시나리오를 작성했었는데 지금 북한의 행동은 그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 성공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

▶핵실험을 하게 되면 폭발로 인해 충격파가 생기기 때문에 핵실험 성공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흙이라고 하는 것을 보통 고체라고 생각하지만 흙도 유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땅굴을 찾는데 극초단파를 이용해 찾는 것과 유사하다.

이번 핵실험은 지하의 수평 갱도를 뚫어 실시했는데 이런 방식이 바닷속 지하 핵실험과 지하 수직 땅굴 실험과 다르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땅속을 수평으로 뚫었는지 수직으로 뚫었는지, 아니면 바닷속 지표를 뚫어 실험을 했는지는 지형 차이에 따라 실험 장소를 달리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핵무기 제조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나.

▶우리나라는 20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으며 원자력 발전 기술은 선진국에도 수출할 수 있을 정도로 기반이 축적돼 있는 만큼 당장은 아니지만 핵무기 제조 능력은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한다.

-이번 핵실험으로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정치외교적인 문제다.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이 재무장할 수 있는 구실을 주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헌법을 개정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일본은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40t가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술적으로 핵폭탄을 만들겠다고 결정한다면 한 달 이내에 제조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위협적인 상황이다.

디지털뉴스[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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