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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적 사고과정 없이 좋은 글을 쓸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요즘 입시 학원가의 화두는 단연 논술이다. 초·중·고 수험생들은 물론 사회 초년생을 위한 취업용 논술 강좌에서, 미취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유아논술까지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지금 논술의 광풍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이젠 그냥 논술이 아니다. 오늘의 논술 앞엔 유행처럼 수식어가 하나 더 붙어다니기 때문이다. 바로 '통합 논술'이다.

많은 사람이 통합논술에 대해 말하고 설명한다. 대부분 창의적 사고력, 비판적 사고력, 통합적 사고력, 또 무슨 무슨 사고력, 아무튼 온갖 종류의 사고능력을 다 가져다 붙이면서 그걸 기르면 통합논술이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학생들 입장에선 그게 모두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뿐이다. 어떻게 창의력을 길러주고, 어떻게 비판적인 사고력을 길러줄 것인가.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지금까지의 논술이 통합논술이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령 대학 입시에서 형이상학적인 철학 문제만을 다뤘던 논술은 거의 없었다. 논술은 이미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범교과적·통합교과적 문제를 논제로 삼아왔다. 그런데 왜, 왜 하필이면 지금 다시 통합논술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기존의 논술 문제에 다름 아니라 수학이라는 학문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지금 문제가 되는 통합 논술은 '수리형 통합논술'이라고 말해야 정확하다. 즉, 수리논술 자체를 본고사로 규정하고 금지한 교육부의 방침에 대해 개별 대학들이 은근한 방식으로 반항하면서 생겨난 것이 바로 이 수리형 통합논술이다. 다시 말해 수학과목을 포함시켜 출제하는 통합 논술의 실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수리형 통합논술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출제되는가. 간단히 생각하면 인문학적 소양을 측정해왔던 기존 문제에 수학문제가 들어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언뜻 보기엔 수학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늬만 수학인 논술문제도 있다. 즉, 몇 개의 통계자료를 제시하고 그 사이에서 일정한 의미를 추출해내도록 유도하는 유형의 문제들은 사실 어려운 수학적 풀이가 필요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2007학년도 성균관대 수시1 '문항2'나 중앙대와 외대의 수시1 문제들은 모두 이런 유형의 문제로 사회탐구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이미 여러번 접해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수리형 통합논술로서 문제가 되는 것은 2008학년도 서울대 1차 예시문항 중 '문항 2'와 '문항4', 2008학년도 연세대 예시문, 고려대와 이화여대의 수시1 문제들이다. 그런데 고려대와 이화여대에서 출제되고 있는 문제는 어렵고 새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간단한 방정식과 함수를 응용한 문제인 경우가 많다. 즉, 몇 개의 복잡한 그래프 속에서 단순한 확률적 변화를 살피거나 그 변화의 식을 세워보는 것이 두 대학 수리 문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문제는 고1학년 수준의 수학과 커리큘럼을 충실하게 받아온 학생들이라면 오히려 수리논술만 따로 출제됐던 때보다 훨씬 평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한편 서울대 1차 예시문항 중 '문항2'는 사실상 수리논술 그 자체다. 그러나 수리논술을 논술고사에서 배제하려는 교육부 방침을 미뤄볼 때 이런 종류의 문제는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결국 인문계열의 학생들에게 까다롭게 느껴지는 수리형 통합논술의 예는 몇 개의 이혼율 공식과 그 장단점을 묻고 있는 서울대 '문항4'와 2008학년도 연세대 예시문이 될 것이다. 이 문제들은 먼저 수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고 그와 같은 수학적 모형 속에서 다시 인문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하기 때문에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면 문제 전체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요약하면 수리형 통합논술은 단순한 통계적 자료를 분석하는 문제(실제 수학 문제는 아니다), 방정식이나 함수 혹은 확률과 통계를 통해 결론을 유추하는 단문형 문제(고대.이대 유형), 아직 실제로 출제되지 않았지만 수학적 모형을 설계하고 그것을 인문학적 문제와 연결하는 장문형의 문제(서울대.연대 유형)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정말 통합 논술이 이러한 방식으로 출제된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먼저 어떻게 수학 공부를 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결국 차근차근 단계적인 수학의 커리큘럼을 밟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수학은 문제만 많이 푼다고 느는 것도 아니고 기초 없이 응용을 할 수 있는 과목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기본적인 함수의 응용과'확률과 통계'에 대한 좀 더 깊은 공부가 매우 유용할 것이다.

다음으로 앞으로의 논술에서는 경제 분야가 문제화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경제라는 것이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유용한 학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경제가 수학적 모형을 보다 쉽게 연결할 수 있는 인문학적 영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적어도 경제 교과서 정도는, 그리고 가능하다면 경제를 설명하는 좋은 책 몇 권을 정독하기를 권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글쓰기 훈련 그 자체다. 한 편의 글을 쓸 때 우리는 단편적인 사고만으로 글을 쓰지는 않는다. 대상을 비판적이고 분석적으로 바라보고 현상과 관련된 다양한 견해와 사실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종합해서 논리를 짜나가는 것이 바로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종합적·통합적 사고과정 없이는 절대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쓰기 훈련 자체가 곧 머리를 움직이는 훈련이고, 그것이 곧 통합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다.
또박또박국어논술학원 고등부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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