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화 '아폴로 13호'에 감동 탑승기 쓰겠다는 꿈 키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국인 우주인 1호 선발을 위한 신체검사가 열리고 있다. 당초 우주인에 지원한 3만6000여 명 가운데 서류전형.달리기 테스트.필기시험의 관문을 거치면서 남녀 500명이 남았다. 9월 28일~10월 2일 사이 항공우주의료원에서 이들의 신체검사가 실시된다. 본지 사회부문 권근영(29) 기자를 비롯한 여성 예비 우주인 60여 명은 지난달 30일 신체검사를 받았다. 신검은 키.몸무게 등 신체계측을 시작으로 청력.안과.심전도.혈액.흉부X선 검사 등으로 진행됐다.

"최근 우주관광을 다녀온 미국 여성은 190억원이나 냈다던데 저는 잘만 하면 공짜로 우주에 가볼 수 있으니 멋진 일 아닌가요."(손근영.27.여.을지의대 본과 2년)

지난달 30일 오전 9시 충북 청원군 공군사관학교 부지 안에 위치한 공군 항공우주의료원. 새벽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63명의 여성이 기대와 긴장이 엇갈리는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한국인 우주인 1호 선발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 우주인 지망생들이다. 산부인과 검사가 필요한 여성 합격자들만 따로 검사를 받았다.

기자를 포함한 여성 합격자 65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청원까지 달려왔다. 교통비.수고비도 일절 없는데 다들 군소리가 없는 게 신기하다. 모인 여성들의 연령대는 10대 2명, 20대 41명, 30대 20명, 40대 2명. 직업은 의사.교수.교사.공군조종사.공무원.회사원.대학생 등 다양했다.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때문인지 검사 도중 금세 친해져 이야기꽃을 피워냈다. '경쟁자'들에 대한 탐색전의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최연소인 장유진(19.이화여대 2년)씨는 "필기시험이 어려워 포기하고 있었는데 예상 밖으로 합격해 가족과 함께 외국에 나가는 일정도 미루고 왔다"며 "나이가 어리니 좀 더 튼튼하지 않을까요"라며 체력을 자신했다.

소유스호에 탑승할 수 있는 우주인의 체중은 50~95㎏. 여성들이어서인지 체중미달을 걱정하는 이색 풍경도 있었다. 건국대병원 전문의 김승자(36)씨는 "검사 중간에 나눠준 빵과 우유를 여러 개 먹고 1㎏을 늘려 간신히 기준을 통과했다"며 "남들은 '아줌마가 웬 우주인이냐'고 하겠지만 미국에선 50살이 다 된 두 아이의 엄마도 우주왕복선의 선장을 맡더라"며 웃었다.

대한항공 김광묵(53) 기장의 딸로 부녀가 함께 신체검사를 받은 김진희(29.웹기획자)씨는 "1986년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 인근의 학교 운동장에서 챌린저호가 발사 후 폭파되는 걸 직접 눈으로 봤는데 그때 여성 승무원이 사망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우주로 나가는 게 위험하단 걸 잘 알지만 별을 향해 도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함께 최종 2명에 뽑혔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덧붙였다.

기자가 우주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영화 '아폴로 13호' 때문이다. 우주선 선장 역을 맡은 톰 행크스가 산소탱크가 폭발하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위기를 극복하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주라니,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험의 극치 아닌가.우주선 탑승기를 근사하게 써보겠다는 포부를 갖고 선발에 참여했다. 그러나 다른 지원자들의 자신감 넘치는 얘기를 한참 듣고 있다 보니 약간 주눅이 들기도 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여성 우주인 후보 1순위로 꼽힌 사람은 공군 수송기 조종사 박상희(27) 대위였다. 박 대위는 "기회가 오면 우주인에 도전할 생각으로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면서도 "우주에서 실험도 한다니 군인보단 과학자 쪽이 더 유리할 것 같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이날 신체검사는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점심은 군대식 '1식 3찬'이 제공됐다. 신체검사를 총괄하는 정기영(46) 항공우주의료원장(대령)은 "전투기 조종사에 해당하는 신체조건이면 제일 좋지만 다소 미달해도 큰 상관은 없다"며 "맹장수술이나 제왕절개 등 몸에 수술자국이 있으면 우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통념"이라고 설명했다.

◆ 남은 일정=우주인 선발대회를 주관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달 중순께 정밀 신체검사를 통해 합격자 300명을 선발한 뒤 21일부터 1박2일 동안 심층 체력검사와 면접을 실시해 30명으로 압축한다. 내년 1월께 우주인 후보자 2명이 확정돼 러시아 가가린 훈련센터에서 기초훈련.우주적응훈련을 받고, 2008년 4월께 마지막 한 명이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에 탑승한다.

청원=권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