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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인 파리 총파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관광차 유럽을 여행하던 중 프랑스 파리에서 메이데이(5월1일)를 닷새 앞둔 4월26일 전국적인 파업을 벌이고있는 현장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신문을 보니 철도·버스·항공·병원·체신학교·일반행정 등 거의 대부분의 공공부문 근로자 약 5백만명이24시간 시한부로 이날 파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지난 83년이래 인플레율보다 월급인상률이 낮아 전체적으로 구매력이 약 8%떨어졌다고 주장하는 이들 공공부문 근로자들은 지난 3월말 정부와의 임금교섭이 깨지자 이 날 실력행사를 벌인 것이다.
그러나 『이날의 모습은「파업도 축제처럼 즐겁게 치른다」는 그동안의 파업관행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안내자는 말했다.
비행기와 철도 및 지하철의 운행 휫수가 절반 가량 줄어들고 응급환자 가료 외에는 병원이 모두 문을 닫았으며 초·중·고등학교도 수업을 하지 않았지만 혼란과 무질서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승용차들이 모두 쏟아져 나와 곳곳에서 길이 막히고 지하철 역마다 평소의 몇 배씩 줄이 이어지긴 했지만 파업을 「노동자의 권리」로 인식하는데 숙달된 프랑스 사람들은 불편을 참고 서로 이해하며 양보하는데 익숙해진 것으로 보였다.
상당수의 근로자들은 이날 오후 지역·직장별로 모여 우리나라식의 결의대회를 가진 뒤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총리관저가 있는 마티뇽가에 집결, 『정부는 2.5%·임금인상안을 철회하라』고 소리쳤지만 폭력사태는커녕 사소한 불상사조차 거의 없이 평화적으로 집회를 끝냈다.
공공부문 노련의 대표가 이날 파업에 대해 『우리의 실력을 보이고 정부에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한 정도』라고 발표한데 대해 정부가 공식적인 성명조차 내지 않고 당초의 정부인상안을 고수하겠다는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채로웠다.
이러한 프랑스의 평화로운 노동자 시위 모습을 보다가 귀국해보니 우리나라는 KBS사태, 현대중공업 파업, 노조파업을 지원하는 대학가의 데모 등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혼란에 빠져 나라가 어떻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싸인다.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눈부시게 변하고「경제전쟁」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극심한 무역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때에 도대체 왜 이러는가. 우리도 하루 속히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정착시켜 선진국처럼 「축제처럼 즐거운 파업」을 벌이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한다.
이경목<서울시성동구중곡2동117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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