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관리가 기업 사활 좌우(아직도 먼 기술개발: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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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로열티 의존은 기술개발에 장애
지난 86년 2월 미국 최대의 반도체회사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사가 반도체 D램 관련특허의 침해를 이유로 삼성전자를 미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그후 1년6개월동안 갖은 고생끝에 삼성은 자사가 확보하고 있는 기술특허를 제공하고(크로스라인선스계약)로열티를 지불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우리 기업에 아주 귀중한 교훈을 주었다. 특허의 중요성과 산업재산권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국내기업들은 관련기술을 개발하기보다는 로열티를 주고 기술을 도입하기를 좋아했다.
자체기술개발에 드는 막대한 투자비를 줄일 수 있을 뿐아니라 제휴사에서 어느 정도 판로도 확보해 주는등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결과 기술관련 무역수지는 해마다 적자폭이 늘어나 81년의 경우 9천5백만달러였던 것이 88년엔 6억6천7백만달러,89년엔 9억1천9백말달러로 확대되었다.
적자가 늘더라도 선진국에서 좋은 기술을 사 올 수만 있다면 문제는 훨씬 낫다.
로열티를 어느 정도 내고 대신 생산기술 수준은 높여 더 큰 수익을 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VTRㆍ캠코더ㆍ광섬유등을 생산해 내고 일부제품에서 경쟁상대로 떠오를만 하자 선진국들의 자세가 싹 달라졌다.
더 이상의 기술제공을 꺼리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자체 개발한 기술품에 대해서도 특허권 제소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우리 수출품이 섬유등에서 가전제품을 거쳐 반도체ㆍ광섬유ㆍ키폰등 고도기술 수준의 제품으로 옮겨가면서 특허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대한 TI사의 제소가 일단락되자 이번엔 프랑스의 SGS톰슨사가 현대전자를 제소했다.
또한 동구와의 교역액이 증가하면서 코콤(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조항도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기술전쟁시대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이상 특허나 산업재산권 문제를 뒷전으로만 내버려둘 수 없게 되었다.
대한변리사회 남상선회장은 선진국의 물질특허ㆍ반도체관련 특허및 기타 산업재산권개방 압력에 대응하고 첨단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체기술의 해외출원을 강화하고 ▲선행기술등 사전에 등록된 특허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며 ▲기본기술에 대한 특허를 도입하는등 특허 클레임에 대한 대응력을 키워야한다고 말한다.
국내기업들도 삼성에 대한 TI사의 제소후 특허 전담부서를 설치해 해외에 특허를 출원하고 관련정보를 수집하는등 부산을 떨고 있으나 아직은 미약한 상태다.
특허청 고금영 정보통신담당 심사관은 『첨단기술의 개발은 결국 특허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즉 외국기업이 특허 침해제소를 해오거나 기술이전등을 해주지 않을 경우 국내기업이 이들이 탐낼만한 관련 특허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는 것이다.
국내기업이 갖고 있는 특허와 상대방 회사의 특허를 교환하면(크로스라이선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국내기업들중 이러한 크로스라이선스를 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과 특허를 갖고 있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도 70여%는 외국인들이 출원한 것이고 30% 정도만이 국내인이 출원한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로열티를 주면 기술을 이전해 준다는 안이한 생각때문에 외국기업들이 탐낼만한 기술을 개발해내지 못한 우리로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비싼 로열티를 주고 기술을 사오거나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관련 기술의 개발에 나서는 수밖에 없게 됐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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