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드롬과 안동준의 비원/진덕규(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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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해방이 되었던 그때 우리 어린이들의 눈에도 미국과 소련은 해방의 은인으로 비쳐졌다. 미군을 환영한다고 어른들이 소나무 가지로 개선문을 만들어 동네어귀에 세우고 그 위에 성조기와 만국기를 꽂았을때 우리들을 마냥 즐거울 수 있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은 미국과 소련은 우리 민족의 큰 은인이라고 가르쳐 주셨다.
○지배층의 사대 질타
한반도를 분단시키고 남과 북에 각기 다른 정부를 세우게 했던 그 장본인들이 미국과 소련인데도,미국은 제일의 우방이었고 소련은 동맹국으로 여기게 하였다. 그 시절에 올바른 민족지도자가 있었다면 서로 힘을 모아 자주적으로 독립국가를 세우는 일에 진력했어야 했다. 그렇게 세운 국가를 미국과 소련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싸워서라도 독립국가를 쟁취했어야 옳았다.
그런데도 당시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힘을 빌려 독립국가를 세우려 했고,소련의 지원으로 정권을 잡으려 했다. 함께 손을 잡고 통일조국을 세워야 한다는 절대적인 과제가 있었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갈라서고 말았다.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것도 알고보면 미국과 소련이 가져다 준 것이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구성되어도 그것들은 일차적으로 미국과 소련을 위한 이념에 지나지 않았다.
외세를 등에 업은 사회주의적 인사들이 설쳐댔던 시대였으니 진실된 민족의 지도자들에게는 설 땅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한 시대였기에 이 땅의 민초들은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래전부터 그 모욕에 분노해온 국민들은 사대적인 지도자들에게 단지 『미국을 믿지 말고,소련에 속지말고,일본이 일어난다. 조선아 조심해라』는 말로 항변했는지도 모른다.
지배층의 사대적 자세를 질타했던 가장 강한 경고를 우리의 최근 세사에서 찾아본다면, 아마도 대원군 집정말기 부산에서 대일관계의 일을 맡아 보았던 왜학훈도 안동준을 먼저 떠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안동준은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려 했던 바로 그 시기에 일본의 무례한 통상요구를 질타하면서 거부했던 기골찬 외교관이었다.
그의 사리에 맞는 주장과 의연함에는 간교한 일본인들조차도 주춤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시 권력을 잡았던 민비일파는 그를 대원군의 측근이라 하여 파직 유배시키고 말았다. 민비는 대원군과의 권력투쟁에서 완전히 승리하기 위해 민비자신의 소생을 세자로 책봉하고,이를 청나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백방으로 비밀외교를 펼치고 있었다.
민비일파는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당시 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던 일본에 부탁도 했고,만일 이 일을 성사시켜 준다면 일본이 요구하는 통상관계를 수립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안동준이 이러한 매국적 비밀교섭을 알게 된 것은 그의 유배지에서였다. 조선과 통상조약을 체결하여 경제적 이권과 정치적 세력을 부식하려 했던 일본의 의도를 일찍부터 간파했던 안동준에게는 민비일파의 이러한 약속이야말로 천년사직의 위난으로 여겨졌다.
특히 청나라를 여전히 상국으로 받들면서 그 나라로부터 세자 책봉을 인정 받으려는 사대주의적 발상에 그는 격심한 분노감을 삭일 수 없었다.
○어제의 분노 잊지말자
그는 붓을 들어 조정의 중신이었던 홍순목ㆍ강고에게 그러한 교섭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첫째,독립국가인 조선이 세자책봉을 청나라로부터 인정 받으려는 것은 종속적인 행동이다.
둘째,조선의 왕실이 청에 대하여 속방이라고 자칭하는 것은 만국공법상 대단히 부끄럽고 위험한 생각이다.
셋째,일본에 대한 외교와 통상은 먼저 우리의 국가 이익을 생각하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 행해져야 한다.
민비일파는 안동준의 이 글에 대하여 크게 분노하여 그를 유배지에서 끌어내고 억지로 죄를 엮은후 동래부에서 참수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가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기 위해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기 한해전인 1875년이었다.
오늘의 이 시점에서 그를 다시 생각하게 됨은 단지 그의 충절 때문만이 아니다. 혹시 아직도 우리들 마음속에 우리나라의 안전이 주변 강대국의 약속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믿는 철부지같은 생각이 남아 있지 않은가 하는 기우 때문이다. 물론 국제 사회에서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다. 그러나 어제의 적이 오늘에 친구가 될 수는 있다해도 어제 우리가 당했던 그 분노마저 잊어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 어제의 일까지도 모두 잊어버리는 항심없는 행동에는 경멸밖에 돌아올 것이 없다. 그러므로 강대국들이 우리민족에게 어떤 존재였던가를 곰곰 되씹어 보고 또 어떤 존재일 수 있는가도 가름해 보는 냉철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자신의 오늘의 상황에 대해서도 눈여겨 보아야할 것이다. 그리하여 안에서 이루지 못한 것은 밖에서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되새김질 해야할 것이다.
○잘못하면 또다른 멍에
특히 정당한 국민통합과 사회발전을 이룩하기 전에 성급하게 추구되는,지난날 우리를 괴롭혔던 국가들과의 교섭에는 그만큼 어려움이 많을 수 밖에 없고 자칫 잘못하면 그것 자체가 민족에게 또다른 멍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유념과 신중함만이 하루 아침에 모스크바 신드롬으로 들떠있는 서울의 성급함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만 1백여년전에 민족적 자주성을 주장하면서 모든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안동준의 그 비원도 성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이대교수ㆍ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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