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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어민 '떡전어' 숨바꼭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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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3일 오후 경남 진해의 해군기지 앞바다에 쳐져 있는 방책선 부근에서 해경이 전어를 잡는 어민들에게 안전한 곳에서 조업할 것을 계도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13일 밤. 경남 진해 속천항에서 통영해경 순찰정 58호(4.5t)를 타고 20여 분 나가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 2~3m 간격으로 촘촘히 이어진 붉은 색 부표들이 나타났다. 멀리 육지 쪽으로는 해군기지 불빛이 보였다.

이 부표는 진해군항 통제보호수역(군항수역)을 표시하는 해상 방책선이다. 민간 선박은 들어갈 수 없으며 적 잠수함 침투를 막기 위해 부표 아래 바다 밑까지 쇠그물이 쳐져 있는 주요 군사시설이다. 부표 안쪽으로는 3000~4000t급 해군 함정 10여 척이 순찰을 돌고 있다. 해군 고속 고무보트들도 경광등을 번쩍이며 오가고 있다.

길이가 10여㎞에 이르는 이 방책선을 사이에 두고 진해 앞바다에서는 요즘 밤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제철 만난 전어의 값이 폭등하면서 방책선 안쪽인 군항수역으로 몰래 들어가 전어를 잡으려는 어선들과 이를 막으려는 해군 사이에 팽팽한 전선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군항수역 최남단인 부도 근처 제5 해상 검문소 앞(부표가 없는 곳)에는 항해등을 끈 해군 함정이 숨을 죽이고 떠 있다. 군항수역 안으로 몰래 들어가려는 어선을 잡기 위해서다.

전어잡이 어선 한 척이 부표 가까이 접근하자 사방에서 서치라이트가 갑자기 켜지면서 해군 경비정이 다가온다. 깜짝 놀란 어선이 뒤로 물러난다. 이날 방책선 주변에는 100여 척의 전어잡이 배가 조업하고 있었다. 20t급 두 척씩 짝을 지어 빠른 속도로 검문소 주변 바다를 오가는 배들이 보였다.

해경 순찰정장 양이철 경장은 "군항수역 안으로 들어가려고 기회를 넘보는 불법 전어잡이 배"라며 "해군 함정이 없을 때 순식간에 침범한다"고 말했다.

8월 말부터 13일까지 해군에 의해 검거된 선박은 20여 척. 해군은 불법 어선들의 군항수역 침범 횟수(8~12월)가 2003년 115회, 2004년 733회, 2005년 1000여 회로 집계하고 있다. 해군 관계자는 "요즘 하룻밤 사이 10여 척이 침범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어선들이 이 해역을 노리는 이유는 이곳의 전어가 다른 곳에서 잡히는 것보다 상품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조업금지 구역이어서 플랑크톤이 풍부해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어 전어들이 산란을 위해 이곳에 모인다. 다른 곳의 전어보다 고소한 데다 거센 조류의 영향으로 근육질이 발달돼 쫄깃쫄깃한 맛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 일대의 전어는 등이 검고 배가 은빛이어서 쉽게 구분되며 '떡전어'로 불린다. 요즘 마리당 가격이 4000원 선으로 다른 곳의 전어보다 두 배쯤 비싸다.

지난해 해군은 군항수역 내 불법 조업을 단속하느라 연간 경비함정 1200여 척과 병력 1800여 명을 투입했다. 함정 연료만 해도 96만ℓ(6억7000여만원어치)를 사용했다.

겁 없는 어선들은 방책선을 절단하고 침범하기도 한다. 지난해 방책선 부표 600여 개가 훼손되거나 유실됐다. 불법 전어잡이 배들이 해군 함정에 돌을 던져 함정이 파손되는 경우도 있었다.

류재일 해군기지사령부 정훈공보실장은 "하룻밤만 잘 잡으면 벌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현재 처벌 조항으로는 불법 조업을 막기 어렵기 때문에 관련 법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해=김상진 기자<daedan@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 떡전어란=진해만 전어가 넓적한 떡처럼 크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길이 20~25㎝, 너비 6㎝쯤 되는 3년 이상 자란 전어를 말한다. 서해안 등 다른 곳의 전어는 속살이 흰색인데 반해 떡전어는 붉은색이 특징이다. 조업이 금지된 군항 수역 바다 밑은 무기 물질을 함유한 개펄 성분이 많은 데다 먹이인 동.식물성 플랑크톤이 풍부해 전어가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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