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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나기 쉬운 범죄 대증요법/권순용 사회부장(데스크의 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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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린이에게 천연두예방을 위해 종두를 주사할때 우리는 그 효과를 의심하지 않는다. 천연두의 원인이 밝혀져있는데다 확실히 체내에 항체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의 경우는 다르다. 항암제라는 약은 더러 있지만 대개의 경우 효과는 적다. 확실히 항체를 만든다는 안심도 없다. 원인의 해명없이 예방대책이 나올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과학에서만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다루는 사회정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범죄문제나 치안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이른바 시국치안은 말할것도 없고 민생치안 또한 마찬가지다. 원인을 진단하고 제거하는 일이야말로 치안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임무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범죄현상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그 처방을 하는 일은 그리 쉽지않다. 더구나 경제규모의 팽창과 함께 사회현상이 다원화되고 다양해지면서 급격한 도시화까지 뒤따라 더 그렇다고들 한다.
어떻든 그동안의 형사정책 내지 치안대책이 대증요법에만 급급해오는 사이 곳곳에서 대낮에도 흉악범이 설치고 여기저기서 불안해 못살겠다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국민들이 「민생치안실종」을 신고한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다. 치안을 되찾아달라는 외침이 높아가고 있다.
민생치안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의 소리가 이처럼 높아갈때면 주무부서인 치안본부나 내무부는 잠깐동안 경찰관을 우범지역에 배치하고,이동방범초소를 운영하는등의 범죄특별소탕작전을 벌였고 법무부나 검찰은 법정최고형으로 강력범을 다스리겠다는 대응처방을 되풀이해 왔다.
이에도 불구,흉악범은 갈수록 그수법이 오히려 흉폭화하고 조직화하자 주무부서차원의 대책회의가 대통령이 주재하는 법정부차원의 대책회의로 승격됐고 그 회의는 원인에 접근하는 처방으로 유흥업소 심야영업제한조치를 재놓았었다.
심야유흥업소가 각종범죄의 온상이 되고있고 이때문에 치안수요가 20%이상 늘었다는 이유였다. 어린이들의 「도둑놀이」에서 보듯 범인을 헐떡거리며 뒤쫓는 식의 치안,다시말해 범죄자에게만 매달리는 범죄대책이 아니라 범죄기회의 봉쇄를 통해 예방하겠다는 원인접근 처방인 셈이다.
치안본부는 그 결과 지난 한달새 범죄발생률이 평균 29%정도 줄었고 밤12시∼새벽4시사이는 43%까지 줄었다고 밝히고 있다. 강도는 36%가 줄었고 절도와 폭력은 28∼29% 줄었다는 것이다. 치안당국은 이를 두고 「서울시민,특히 주부의 80%이상이 찬성하는 사회혁명」이란 자찬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심야영업을 하는 유흥업소 가운데는 퇴폐분위기를 조장하고,범죄조직의 온상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는 지적도 없지않았다. 그러나 정부가 총력전을 벌여 단기간에 얻은 결과를 놓고 유흥업소 영업시간제한이 곧 범죄감소라고 말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범죄자만 뒤쫓아 다니던 치안대책이 범죄기회의 봉쇄에 착안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평가될만하다. 그러나 범죄기회봉쇄에 의한 방범대책은 스스로 한계를 갖는다. 유흥업소주변에서 있어온 강도나 폭력ㆍ절도가 없어졌다고해서 장기적으로 우리사회전체의 강ㆍ절도나 폭력이 줄어든다는 발상은 지나치게 안이한 행정편의주의적 사고로 밖에 볼수 없다.
범죄기회의 봉쇄는 사회전체적으로 행해져야한다. 일과성의 충동범죄만이 아니라 계획범죄까지를 줄이려면 전국의 범죄소지가 있는 곳을 모두 봉쇄해야할 것이다. 어설프게 어떤 곳을 막으면 다른곳에서 터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모처럼의 범죄예방을 위한 조치로 취해진 유흥업소 영업제한이 더 큰 부작용을 낳지않을까 우려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관허」로 해온 양성영업이 음성화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달들면서 서울시내 일부 아파트에서는 벌이가 시원찮은 업소를 그만둔 호스티스들이 단골 고객을 안방으로 초대해 즐기게하는 「영업」이 생겨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관광업소나 숙박시설건물의 업소는 장소를 옮겨가며 무제한 영업을 하게되고,퇴폐는 더 심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갑자기 늘려놓은 관허유흥업소만 1만7천여곳,무허업소는 2∼3배이상으로 추산된다.
가족까지 합치면 「관허」에만도 60만명이상이 매달려있는 산업이다. 그런데 정부의 장려로 벌여놓은 사업이 갑작스런 영업시간제한조치로 수입이 3분의1로 줄었고,그나마 실직사태까지 몰고왔다는 사실은 또 다른 범죄의 싹으로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졸속행정의 부작용으로 우려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필요한 때 권장하면서 철야영업을 보장해놓고 예고없이 대폭 제한해 미처 전업준비도 못하는 바람에 「월부」 생활자들의 생존을 위한 더 큰 치안수요의 소지를 안게된 셈이다. 장소를 옮긴 또다른 「범죄」를 미리 막기위한 보완대책을 서두를 때다.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일본의 두배에 가까운 우리사회의 범죄발생률과 범죄유형의 다양화,범죄연령의 확산및 행태의 흉폭화 등에 대한 정확한 원인규명과 범죄에 사회가 「전체」로 대응하는 자세의 정비다.
정부와 여당이 총동원되다시피 하면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책회의를 열고도 기껏 「통제가능한 천연두」라는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무서운 암」이라는 말로 불안감만 가중시키고 대증요법에만 매달리는 것같아 안타깝다. 늘어나는 범죄의 심각성을 일깨워 사회전체가 그 예방에 나서도록 하는 정부당국의 지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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