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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72. 인생·경영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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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첨단 단층촬영 장비인 '64 MDCT' 가동식에 참석한 필자(中).

사업가도 전문경영인도 아닌 나에게 "경영철학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이가 더러 있다. 그럴 때 문득 내가 고비고비마다 내린 판단과 실천의 기준을 되돌아보곤 한다.

우선 나는 '사람 속으로'라는 말을 좋아한다. 병원을 세울 때는 반드시 사람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믿었다. 병원이든 기업이든 사람이 붐벼야 성공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치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

그 다음 많은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얻어 그들 가운데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열린 마음으로 베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난 어떤 일에서든 사랑을 우선시 했다. 그러면 늘 결과가 좋았다.

내가 '보증금 없는 병원''돈이 없어도 치료해 주는 병원''무료 진료'를 과감히 실천하고,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백령도.철원.양평길병원을 인수한 것이 그 예다. 조그만 산부인과가 종합병원으로 성장한 것도 나와 사랑으로 맺어진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병원을 아껴주고 널리 알려준 덕분이리라. 당장 눈앞 잇속과는 거리가 멀고 어리석어 보이는 듯한 베풂과 사랑은 절대적인 신뢰를 낳는다. 이 신뢰가 실로 엄청난 힘을 발휘함을 나는 실감해 왔다.

우리 병원과 대학의 가족들과도 믿음을 바탕으로 '권한 위임'을 실천했다. 믿고 업무를 맡긴 임직원들은 앞장서서 의욕적으로 일하고, 나의 영향력은 분배됐다. 이 덕분에 조직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판단을 신속히 내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정확하고 치밀한 판단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1987년 신경외과 과장이 '뇌정의 수술기계'가 필요하다며 구입해 달라고 했다. 난 이름조차 생소한 의료장비가 그때 돈으로 24만 달러라는 데 놀랐지만 주저하지 않고 도입하라고 했다. 그 뒤에도 첨단 고가장비 도입, 거액을 투자해야 하는 건물 신축 및 리모델링 때마다 난 철저한 분석을 거쳐 신속하게 결단했다. 첨단 의료장비의 경우 다른 병원에선 결재라인을 맴도는 동안 우리는 이미 설치를 마친 때가 많았다. 그렇게 한 걸음 혹은 반걸음씩 앞서 왔다.

나는 세계를 상대로 도전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한다. 산부인과가 잘 되는데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병원이 궤도에 오른 뒤에도 일본에 가서 선진의술을 배웠다. 안주(安住)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지금도 뇌과학을 비롯한 미개척 분야에 돈과 인재를 투입해 도전하고 있다.

나는 일이 닥치면 전력을 기울이는 '완전연소(完全燃燒)'를 지향한다. 좀 가혹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후배들에게 "하루 네 시간 이상 자면서 성공할 생각은 말라"고 충고한다.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노력의 결정(結晶)으로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내 경험이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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