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 로옴코리아사(마음의 문을 열자: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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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노사 힘모아 「죽는 회사」도 살린다/단체교섭 두달에 고함 한번 없어/부도 위기 닥치자 「화합의 지혜」 깨달아
『근로자 8백30명 전원이 노조에 가입해 있지만 평균 근속연수와 재형저축 불입금액이 공단내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느 회사보다 먼저 노사갈등을 겪었던 서울 가리봉동 구로3공단내 전자부품회사인 ㈜로옴코리아 심장섭사장(58)은 몇년전까지,지긋지긋하게만 여겨졌던 노사분규가 지금와서 생각하니 회사발전ㆍ경영합리화의 밑거름이 됐다고 회상했다.
특히 한일합작회사로 일본자본의 점유율이 80%에 달하고 있지만 다른 외자기업들이 지난해 철수ㆍ폐업ㆍ합병에 따른 심한 노사분규를 겪은 것과는 달리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을 대견스러워 했다.
실리콘 트랜지스터ㆍ디스플레이ㆍ고정 저항기 등 각종 전자부품을 만들고 있는 이 회사에 노사진통이 시작된 것은 다른 업체보다 훨씬 빠른 84년쯤부터였다.
78년 7월1일 노조가 설립된후 84년 대학운동권출신의 소위 「위장취업자」들이 노조집행부를 맡으면서 노사간 갈등이 심화됐던 것.
단체협상때는 꽹과리와 북이 동원되는 것은 물론 잔업 거부ㆍ회사 성토농성이 며칠씩 계속됐다.
20대 조합간부들이 50대 사장의 책상을 두들기고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신발을 벗어 휘두르기 일쑤였다.
대화보다 행동이 우선하던 시절이었고 사장을 비롯한 관리자들도 근로자들을 감시의 대상으로 여겨 몸싸움으로 부딪치기에 급급할 따름이었다.
『전혀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양순하기만 했던 근로자들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변하다니…. 그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지 지금처럼 대책을 세울 생각은 못했었습니다.』
잦은 태업과 잔업거부로 생산량이 감소됐다. 선적기일을 지키지 못해 해외에서의 주문이 급격히 줄었다. 불량품이 많이 생겨 반품사태까지 생겼다.
자연히 회사의 자금 압박이 심각해졌다. 회사 간부들은 매일매일 부도를 막느라 뛰어다녀야 했다. 근로자 봉급이 늦게 지급되고 보너스가 밀리게 됐다. 회사가 문닫기 직전이란 소문이 나돌았고 근로자들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85년3월 조합간부들중 일부가 「위장취업 노조간부」들과 방향을 달리했다.
『회사를 살려놓고 보자』는 구호를 들고나오자 근로자들이 하나둘씩 호응하기 시작했고 노조집행부가 불신임당했다. 「위장취업자」들은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신임 노조는 「한꺼번에 해결할수 없다」는 자세로 양보했다. 회사측도 경직성을 탈피하고 노조를 보는 시각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서로의 따스한 눈길이 마주쳤고 자연스레 타협점을 찾아 생산량은 늘어갔고 불량품 반품은 줄어들었다.
지난해 노조측은 80개항에 달하는 노조원들의 요구조건을 받아 스스로 10개로 압축해 단체교섭에 임했고 결국 상여금 1백%인상ㆍ조정수당신설 등 4개항에 합의했다. 2개월동안 18차례의 지루한 교섭을 가졌지만 단 한차례의 고함이나 삿대질이 없었다.
『이제 회사는 종업원이 1천3백50명,88년 매출액 5백53억원으로 본궤도에 올랐습니다. 동종업계가 모두 적자를 냈지만 우리는 순이익도 26억원이나 냈어요. 제1공단에 분공장도 세웠고…. 모두 슬기롭게 어려운 시절을 잘 지내준 근로자들의 덕분이지요.』
사장 심씨는 4일 오전 시무식에서 5천6백여평의 1,2공장 건물이 모두 근로자들의 것이라며 새해에도 근로자 복지에 힘쓰겠다고 약속,많은 박수를 받았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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