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로 중국 유혹하는 차베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중국과 남미 베네수엘라가 한창 밀월을 즐기고 있다. 석유 확보와 남미 지역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중국과 반미(反美)전선 구축에 중국을 끌어들이려는 베네수엘라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22일에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베이징(北京)에 도착해 중국 정부의 환대를 받았다.

◆ 석유로 중국에 접근=차베스 대통령은 앞으로 엿새 동안 중국에 머물며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중국 지도부 인사들을 줄지어 만난다.

주요 의제는 역시 석유다. 차베스는 방중 직전 "앞으로 대중국 하루 원유 공급량을 현재의 15만 배럴에서 20만 배럴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6월까지 대중국 석유 공급량이 전년 대비 40% 늘었는데도 이를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방중 기간 중 중국으로부터 18척의 유조선과 24대의 석유 시추기를 구매하는 계약에 서명한다. 20억 달러(약 1조9000억원)에 가까운 액수다.

4억 배럴의 원유와 4조 입방 피트의 천연가스가 묻힌 베네수엘라 동부 주마노 유전을 중국 측과 공동 운영하고, 자국 석유회사 페트로레오스가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와 합작해 석유개발 사업도 펼치기로 했다.

차베스는 그 대신 중국 지도자들에게 자국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도와 달라고 요구할 예정이다. 유엔에서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남미의 과테말라를 비상임이사국 후보로 밀고 있다.

◆ 실익 챙기는 중국=중국은 석유 공급 확대 등 베네수엘라의 잇따른 중국 우대 조치에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 지원 문제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22일 중국은 정치.경제적 이유로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안보리 진출을 무조건 지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상하이(上海) 국제문제연구소의 장야오 연구원은 "중국은 차베스의 반미정책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존중한다'는 외교적 수사로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반감을 모두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 신경 곤두세우는 미국=뉴욕 타임스는 미 국무부가 코앞의 반미국가를 견제하기 위해 최근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담당할 조정관을 임명했다고 21일 전했다. 차베스의 방중에 대해선 아직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무부는 이미 5월 저우원충(周文重) 주미 중국대사에게 베네수엘라와의 협력 강화에 대한 중국의 입장 설명을 요구했다. 당시 저우 대사는 "베네수엘라와의 협력 강화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대 베네수엘라 투자액도 미국의 10분의 1에 불과한 만큼 통상적 경제 교류이고 남미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는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중국과 베네수엘라의 접근은 결국 남미 영향력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경쟁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