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가 뭘 잘못했는지 꼽아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노무현(사진) 대통령이 "임기가 이제 거의 끝나간다"며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13일 경향.서울.한겨레.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을 청와대 관저로 초청해 2시간30분간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다. 특히 노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개혁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고 기존 정책들을 관리만 할 생각"이라는 등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과 관련한 심경도 털어놓았다. 다음은 참석자들이 전한 노 대통령의 발언 요지.

◆ 낮은 지지율 최근에는 고민한다="남은 임기 동안 개혁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렵고, 기존 정책들을 관리만 할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편지 형태로 발표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지지율 고민을 거의 안 했는데 최근에는 일부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같은 경우도 너무 당연한 것인데 내 지지율이 낮다 보니까 훼손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내 지지율이 낮아서, 내가 미워서 정책을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지지율 올리려고 그러는 것 아닌가는 의혹도 받는다. 임기가 이제 거의 끝나 간다. 지금은 더 이상 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국회가 8개월 동안 안 열리고 있는데 국회를 열라고 하는 여론의 압력도 전혀 없다. 공기업 기관장들은 말을 잘 안 듣는다. 과거에 임명돼서 내려온 사람들이어서 나가라고 할 수도 없다. 외부 감사를 많이 임명하는 것도 그런 견제의 의미가 있다."

◆ 잘 물려줘야겠다는 생각도 많아="참여정부는 잘못한 거 없다. 국정과제를 뽑아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왔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한번 꼽아봐라. 내 집권기에 발생한 사안 중 문제는 성인오락실 상품권 문제뿐인데, 그건 성격이 청와대가 직접 다룰 것은 아닌 것 같다. 전시작통권 문제와 관련해 비판이 많아 국책연구원에 자료를 만들어 보내라면 틀에 박힌 보고서만 올라온다. 내가 지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힘이 빠질 이유는 없다.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자식들 문제로 임기 말에 힘이 빠졌는데 나는 그럴 일이 없다. 내가 권력기관을 갖고 휘두른 것도 아니고, 특별히 힘이 빠질 이유도 없고, 끝까지 국정 장악력을 갖고 간다. 양극화나 비정규직, 소득 재분배 문제 등은 진전을 보고 있지만 해결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누가 해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누가 오든 한번 잘해 봐라는 식의 꼬부라진 마음도 있고, 잘해서 물려줘야지 하는 펴진 마음도 있다. 저렇게 막 괴롭히고 그럴 때는 한번 혼나 봐라는 심정으로 경험을 안 물려주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지금은 잘 물려 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다."

◆ 전작권, 노무현이 하니까 문제="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는 미국과 다 이야기가 돼서 하는 건데 일부 보수 언론이 10년 전과는 다른 논리를 바탕으로 공세를 취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노무현이 하니까 문제인 거 아닌가. (반대론자들의)대북 억지력 얘기는 빗나간 것이다. 작전권을 넘겨받더라도 문제는 없다. 한미연합사나 작계 5027은 북한이 우리를 침공했을 경우 반격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이다. 김정일 체제가 붕괴되는 등 급변사태가 불거졌을 때 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중국은 국경까지 미군이 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 북한 비상 상황 시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제쳐놓고 북한 문제를 처리할 우려도 있다. 또 동북아 상황에서 주변 국가들이 패권 경쟁을 하는데, 구한말에 힘이 없어서 당했던 것처럼 그런 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힘을 갖는다는 차원에서도 작전권이 필요하다."

◆ 부시 대통령이 나를 좋아한다="(북핵 6자회담에 대해)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좌절감을 느낀다. 북한 문제를 놓고 미국에 대해 더 이상 설득하기가 힘들다. 9월 정상회담에서도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현재까지는 개인적으로 나를 좋아한다. 기면(맞으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확실해서 좋다고 하더라.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합리적인 판단도 빗나 갈 때가 많다. 북한과의 비공식 채널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런 것은 실제 없다. 만들려고 하다 보면 북한과 공식적인 관계 맺고 있는 기관들이 불평을 한다. 내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신임하면 북한이 이종석 장관을 믿고 뭔가 얘기를 할 것이다. 이 장관은 북한과 접촉할 수 있는 가장 신뢰할 만한 통로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는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선택이다. 결코 한국이 손실을 보지 않을 것이다."

◆ 진보, 보수에 협공당하고 있다="좌파라고 해봐야 기존의 차선에서 겨우 한두 차선 왼쪽으로 가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언론은 내가 왼쪽으로 가면 왼쪽에다 기총 소사하고,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쏘아 댄다. 진보에서는 한.미 FTA, 보수 쪽에서는 전시작통권 때문에 공격한다. 좌우로 협공당하고 있다. YS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한 뒤 결과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보다 결국에는 언론에 당했고, DJ는 세무조사를 발표해서 당한 거다. 해도 안 해도 당하니까 나는 세무조사 하지 않는다.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 경질 논란과 관련해)아리랑 TV가 적자가 많다. 그것을 우리 쪽 생각은 사업이나 기능을 늘려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자고 했는데 저쪽에서는 기구를 줄여 부사장 자리 같은 것을 없애서 풀려고 한 게 차이였다."

박승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