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을 아시나요…순종임금 상대로 소송 첩 제도 인정도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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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10년대 우리나라의 법률 문화는 어땠을까.

법원 도서관은 1912~14년 조선총독부 고등법원(현 대법원) 판결 112건을 모은 '조선고등법원 판결록' 제2권 민사편을 18일 공개했다. 당시는 일본을 거쳐 유입된 개인적 권리와 계약관계 등 근대적 법 개념과 조선시대의 관습이 혼재된 모습이었다.

◆ 첩(妾) 제도 인정=2년간 동거하던 여인이 집을 나가자 김모씨는 1912년 "첩이었던 사실을 인정해 달라"며 부부 동거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김씨의 잦은 구타를 못 견딘 이 여인은 "부첩(夫妾) 관계를 끊자"고 선언한 상태였다.

법원은 "조선인 사이에서 부첩 관계는 부부와 같은 엄숙하고 정중한 절차가 필요치 않고 당사자 일방의 의사가 있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해소될 수 있다"며 여인의 손을 들어줬다.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첩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의사 표시를 하고 떠남으로써 부첩 관계가 끝났다"는 것이다. 이는 첩 제도를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나온 판결이다.

◆ 임금 상대로 재산 소송=정모씨는 1914년 순종을 상대로 "명성황후의 묘인 홍릉을 넓히면서 소유하고 있던 땅과 분묘가 홍릉에 편입됐으니 다시 돌려 달라"고 소송을 냈다.

정씨는 토지 도면, 관계자의 증언서 등을 제출했지만 법원은 "묘의 경계 안쪽으로 편입된 땅은 당연히 왕실의 소유라는 게 조선의 옛 관례"라며 순종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국권 침탈 전까지 황제로 불렸던 순종을 '창덕궁 이왕(李王)'으로 격하해 표현했다.

◆ '이해득실' 판단 능력 있으면 성인=1910년대 법원은 이해득실을 판단하는 능력을 성인의 기준으로 봤다. 일본인 미쓰오카는 만 15세인 김모군을 상대로 '토지매매 증명 말소 이행 청구 소송'에서 "조선에는 만 20세가 돼야 성년으로 인정하는 관습이 있다"고 주장했다. 1, 2심 법원은 미쓰오카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고등법원은 "조선에서는 관혼의 예를 치르거나 이해득실을 판단할 능력을 갖추면 성년이 된다"며 김군의 편을 들었다.

◆ 일본인과 재산 소송에서 승소한 이완용=일본인 구보타는 1912년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완용을 상대로 전북 부안 등 토지 79만 평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경성지방재판소에 소송을 냈다. 1, 2심 재판부는 "이완용 측이 자신의 땅임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구보타의 소유를 인정했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뜻밖의 이유를 들어 결론을 바꿔 버렸다. 구보타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완용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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