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짬짬이 앉아 쉴 곳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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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기도 수원S국교 5학년 담임 신 모 교사(33·여)는 1주일에 3시간씩 들어있는 체육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본관3층의 양호실을 찾는다.
특별히 아픈 곳이 있어서가 아니다. 학생들의 눈을 피해 평상복을 체육복으로 갈아입기 위해서다. 이같은 번거로움은 학교에 교사용 탈의실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
남자교사 들이야 평소 학생들을 밖으로 좇아내고(?) 빈 교실에서 옷을 갈아입곤 하기만 여교사의 입장에서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 그래서 여교사들은 체육시간만 되면 신 교사처럼 안전한(?) 양호실로 찾아들게 마련이다.
평소 체육복 갈아입기 못지 않게 신 교사를 번거롭고 피곤하게 하는 것은 교무실에서의 전화 받기. 최소한 하루 한두 차례씩은 달리기경주(?)를 해야한다. 교사 50여명이 사용하는 전화는 교무실에 설치된 단 한대뿐.
일부 학교처럼 층마다 수신용 전화기가 따로 설치 안돼 『전화 왔다』는 구내방송이 나오기 무섭게 별관3층 교실에서 본관1층 교무실까지 3백여m를 줄달음질 쳐야한다.
그나마도 다른 선생님들이 차례라도 기다릴 때는 할말도 다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기 일수여서 아예 가족·친구들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학교전화는 사절」이란 양해를 구해놓고 있다.
남녀공학인 서울T고의 양호실은 S국교와는 달리 여교사들의 휴식처로 또 다른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학교에는 여느 학교와는 달리 이번 학기부터 5평 크기의 여교사 휴게실이 마련됐지만 소파만 몇 개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충분한 휴식공간이 되지 못하는 겉치레휴게실. 그러니 양호실이 몸이 약하거나 임신한 여교사들의 단골 휴게실로 바뀌어 버렸다.
서울강남의 J고는 아예 휴게실이란 공간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 학교 3학년 담임 이모교사(43)는『하루 5∼6시간씩 강행군을 하지만 다음 수업을 위해 쉴 공간이란 반평 짜리 책상밖에 없는 실정』이라며『이 때문에 오후 수업시간에는 파김치가 돼 푹 쉬고 싶은 생각뿐』이라고 푸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서울등 대도시 일부 국민학교나 과대학교는 휴게실은커녕 교무실마저 형식 치레로만 갖춰져 교사들의 휴식공간은 생각조차 못한다.
국내 최대학교 (95학급)로 소문난 서울 독산 국교는 교사 1백3명에 교무실은 겨우 50평. 교사 개인용 책·걸상을 들여놓을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한 책상에 서랍을 4개씩 마련, 책상 하나에 교사 4명이 함께 쓰는 콩나물 교무실이다.
이 때문에 모든 교사들이 함께 모이는 전체 회의는 1주일에 세 차례씩 하는 간단한 조회뿐이다.
이처럼 전체 교사들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드물어 교사끼리도 담당학년이 다르면 「낯선 사람」의 관계가 되고있다. 교실 난으로 교무실이 이 모양이니 교사휴게실·탈의실요구는 차라리 사치스런 주문이라는 것이 교사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이같은 사정은 서울 강남 등의 신설학교도 마찬가지.
지난6월 새로 문을 연 서울 영희 국교(일원동)도 30여평 교실을 이동식 칸막이로 막아 반쪽은 교사독서실과 휴게실로 쓰고 나머지 반쪽을 교무실로 쓰는 형편이다.
이 학교 하성종 교감은『물론 충분한 공간이 확보돼 제 모습을 갖춘 교무실을 제공할 수 있으면 바랄 것이 없지만 강남지역 학교는 학생들의 2부제 해제가 보다 급선무이기 때문에 교무실은 물론 교사휴게실 이나 탈의실 등 교사들의 근무환경개선은 뒷전으로 처질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교사들의 근무환경은 학생수의 감소로 교실이 여유가 있는 농촌지역 이나 서울 강북 등 대도시 일부지역은 그래도 다소 나은 편.
서울 수유중의 경우 본 교무실외에 2교무실(과학부), 3교무실(교도부), 4교무실(체육부)등4개의 교무실에 교사 휴식공간도 탁구실·서예실·휴게실 등이 각각 마련돼 있고 서울 미동국교도 학년별로 교사휴게실 겸 연구실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이같은 환경은 그림의 떡. 특히 교사들의 교과별 연구실을 갖춘 곳은 손꼽을 정도다.
한국교총이 86년 실시한 교원복지·편의시설 조사에 따르면 휴게실은 ▲국교 97% ▲중학교 83% ▲고교 73%가 없다. 탈의실은 초·중·고교가 92% 이상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은 그동안 개선이 별로 안돼 현재도 거의 같은 실정이라는 교총 측의 지적이다.
『요즘 웬만한 직장 치고 휴게실 없는 곳이 어디 있어요. 온종일 서서 가르치는 관계로 휴게실에서 다리를 펴고 따끈한 차 한잔이라도 마실 수 있으면 잠시나마 피로를 풀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하니 피로감이 결국 수업결손으로 이어집니다』
서울 S여고 정 모 교사 (43) 는『해방이후 학교교육시설은 교육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학생수용 위주의 시설확장에만 급급, 교사들의 교내 근무여건은 도외시돼왔다』며 『기본적인 교원근무환경 개선 없이 근무 의욕고취, 활발한 교재연구를 통한 교원 자질향상 과 알찬 수업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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